[역사속의 오늘- 2월 24일] 독립운동가 ‘강근호 선생‘ 타계...청산리전투 최연소 중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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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2월 24일] 독립운동가 ‘강근호 선생‘ 타계...청산리전투 최연소 중대장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2.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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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1960년 오늘은 독립운동가 강근호(1888년 11월 3일 ~ 1960년 2월 24일)선생이 사망한 날이다.

강근호 선생

▲ 생애 및 독립 투쟁

강근호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출생했으며, 1916년 함흥중학교 2학년 시절 학생사건으로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만주로 망명했다. 그는 1919년 3월 옌볜의 룽징촌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같은 해 만주군정서 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신흥무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20년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의 제1학도대 제3구대장을 지내다가 ‘청산리전투’의 제1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최연소 중대장이었다.

이후 1921년 군정서 사관으로 있다가 일제가 독립군의 근거지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경신참변(간도 참변)을 일으키자 학살을 피해 러시아 자유시로 건너갔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을 겪은 뒤 이르쿠츠크 고려혁명군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고, 1922년 공산주의 반대 투쟁을 전개하다가 이르쿠츠크 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하게 되었다. 출옥 후에는 다시 만주로 돌아와 계속 항일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43년 애국동지회 청년군사훈련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1945년 일본 패망과 광복이 되자 1947년 귀국했다.

부인 이정희 여사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 소위로 임관해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03사단 113연대장으로 참전했으며 1952년 6·25 전쟁 중에 학도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한 이정희를 만나 1953년에 연병장에서 결혼했다. 이정희 여사는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시영의 증손녀이다. 1956년 5월 중령으로 전역 후 부산 영도구에 정착하며 생활하다 1960년 2월 영도 영선동에서 63세로 사망했다.

▲ 상훈 및 추모

1977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강근호 선생 기념비

2000년 4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장산 폭포사 인근에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2003년 9월 국가보훈처 현충 시설물로 지정되었다. 2005년 4월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유해는 1964년 부산 장산에서 1990년 12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강근호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청산리전투에서 산화한 독립군을 위해 작은 돌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기 바란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출처: 위키 백과 / 다음 백과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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