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2월19일] 지동설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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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2월19일] 지동설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1.02.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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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473년 2월 9일은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날이다.

그는 당시 진리처럼 믿어온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한 인물로 잘 알려졌다.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하여 논의에만 몰두하던 스콜라학의 학문적 전통을 따르지 않고 천체관측과 궤도 계산을 위주로 하던 실지 천문가였다.

그가 과학사에 등장하기 전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성질에 대한 통념이 기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등장으로 근대 자연과학은 암흑기에서 과학혁명으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

▲ 성장배경

코페르니쿠스는 현재의 폴란드 중북부에 있는 당시의 한자동맹 도시인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는 관리이자 주철업을 하는 아버지 니콜라스 코페르니크와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지방 출신인 어머니 바르바라 바첸로데 사이의 네 자녀 중 막내였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코페르니쿠스는 아버지를 잃고 외삼촌 밑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491년 당시 독일의 작센에 속했던 폴란드 남부 대도시 크라카우(현 크라쿠프)로 가 대학에 입학, 1494년까지 수학 및 천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인 1495년에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가 삼촌의 권유로 신학과에 입학한다.

이탈리아에 머무르면서 코페르니쿠스는 또한 로마 및 파도바 대학에 등록하여 강의를 들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 우주 모델에 대한 구상

플라톤주의와 고대문헌 조사의 영향으로 태양중심설을 구상하게 된 그는 레기오몬타누스가 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한 핵심적 문제제기가 실린 책  ‘요약’을 접하게 됐다.

코페르니쿠스는 1510년에 태양 중심의 천문체계의 기본적인 틀을 완성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해설서’라는 요약본 형태의 원고를 지인들에게 돌렸다.

이후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발표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주와 지구는 모두 구형이며 천체가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지구도 원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행성을 하나, 하나 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체계로 보아 행성간의 관계를 부여함으로써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과 큰 차이점을 두었다.

▲ 지동설의 당시의 반응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내용은 당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전통적인 교회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혁명적인 이론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는 출판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매우 미약했고 크게 반발하는 세력이나 열렬한 지지 또한 없었다. 내용이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이해가 어려웠던 탓이다.

개신교 일부에서 지동설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16세기까지 침묵하던 로마 가톨릭은 1616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로 지정하게 된다.

헤르메스주의자였던 브루노가 코페르니쿠스체계를 옹호했기 때문인데, 그는 옛 이집트 종교가 참된 신앙이며 가톨릭도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금서에서 풀린 것은 1758년의 일이다.

▲ 오늘날 과학사에 미친 영향

많은 역사가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1543년을 과학혁명이 시작된 시기로 생각한다.

코페르니쿠스는 과학혁명의 중간적 존재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사로잡혀 있던 2000년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과학사가 토머스 쿤은 코페르니쿠스를 최초의 근대 천문학자이면서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라고 표현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체계를 설정함으로써 ‘행성들의 관계’를 부여했다는 데서 공을 찾을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모델은 케플러가 행성 운행에 대한 세 가지 법칙을 찾아내는데 바탕이 되었으며 갈릴레이, 뉴턴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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