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월 27일] ‘김재준 목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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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월 27일] ‘김재준 목사’ 타계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1.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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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김재준(1901년 9월 26일 ~ 1987년 1월 27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형성과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 설립에 공헌한 장로교 목사로 진보적인 신학자이다. 호는 장공이다.

▲조선신학교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설립

1901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김재준은 청년기에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는 유학자 아버지에게 사서삼경과 동양고전을 배우면서 자란 덕분에, 한국인의 주체적인 눈으로 서구에서 전래된 개신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일본 도쿄 아오야마신학교,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1940년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세웠다.

당시 일본제국의 신사참배 요구 때문에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를 자진 폐쇄해야 했기 때문이다.

1945년 경동교회를 창설하는 목회를 진행한 그는 1947년 신학노선문제로 정통시비에 휘말리다가 1952년 장로교총회에서 제명됐다.

지금은 신학교에서도 가르칠 정도로 성서비평학이 성서연구방법론으로 존중받고 있지만, 축자영감설이 당연시되던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1953년 대한장로회는 제38회 총회에서 "목사 김재준씨는 제 36회 총회결의 위반 급 성경유오설을 주장했으므로 권징조례 제 6장 42조에 의하여 예수의 이름과 그 직권으로 목사직을 파면하고 또 그 직분 행함을 금하노라 선언"했다.

이에 장로교회에서 목사직을 박탈당한 김재준은 일부 세력과 연합해 대한성공회와 더불어 가장 진보적인 교회로 불리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설립했다.

1958년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1년 한국 신학대학 학장을 거쳐 1963년 10월 정년퇴임과 함께 명예학장으로 추대 됐다. 1965년 기독교장로회 총회장, 한국신학대학 이사장을 역임했다.

김재준 목사 목회

▲민주화운동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보수적인 교계의 원로목사들은 목사가 왜 정치에 관여 하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교계 원로목사들이 교회의 민주화운동참여를 반대한 진짜 이유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적인 대다수의 개신교계에서는 5.16 군사정변을 하나님의 뜻으로 미화해 군사반란을 지지하는 설교를 할 정도로 반공주의 성격의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진보인사들을 정치목사취급하거나 공산주의자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근거, 민중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는 주체로 해석하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던 민중 신학자들을 한국교회에서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개신교 목사의 양심상 성직자의 의무인 예언자 역할을 버릴 수 없었다. 이에 기독교 단체를 다니며, 군사정권의 연장을 뜻하는 삼선개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이러한 국민들과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1969년 9월 14일 새벽, 개헌안은 기습적으로 통과 되어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김재준 목사는 자신의 예언자적인 양심실천을 중단하지 않았고, 그의 제자인 문익환 목사, 서남동, 안병무 등의 민중 신학자들이 이를 계승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의 공화당정권에 대한 도전을 감행해 사회참여와 민주화운동을 고취했다.

1965년 한일굴욕외교반대투쟁 때부터 반독재민주화투쟁에 참여 했으며 1969년 3선 개헌 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 1972년 국제앰네스티한국위원회 위원장, 1973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일했다. 1974년 캐나다로 이주해 북미주한국인권수호협의회 의장, 북미주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위원장, 한국민주촉진 국민연합 고문 등으로 활약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김재준 목사는 민주화운동과 성서비평 학을 통한 한국교회 신학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인정되어 2002년 12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됐으며 당시 한 언론에서 ‘역사를 바꾼 크리스천’ 장공 김재준 목사… 교회개혁 비전 제시한 선각자 이다. 라고 기사됐다.

▲주요 저서

‘낙수(1953)’, ‘요한계시록주석(1968)’, ‘황야에 외치는 소리(1983)’, ‘범용기(1983)’ 등이 있다.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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