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월18일] 통일·사회운동가 '문익환 목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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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1월18일] 통일·사회운동가 '문익환 목사' 타계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1.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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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문익환(文益煥, 1918년 6월 1일 ~ 1994년 1월 18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다. 또한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이며 참여시인이었다. 호는 '늦봄'(晩春)이다.

문익환 목사는 통일이 되지 않으면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는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라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한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서학자로도 활동했다.

그 실례로 문 목사는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 목사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측 번역자로 참여했으며, 구약성서를 다윗, 사무엘 등의 영웅들에게 가려진 민중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히브리 민중사'를 저술했다.

1994년 1월 18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 신학공부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문재린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는 용정에서 학교를 다녔고 윤동주, 장준하와 절친한 동무였다.

친구들과 함께(뒷줄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은 윤동주)
친구들과 함께(뒷줄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은 윤동주)

평양신학교는 근본주의적이니,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라는 부친의 권유로 1938년 도쿄의 일본 신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신학교 입학시 문익환은 신학적인 갈등을 겪는다.

당시 일본신학교에서는 성서비평학이 활발했는데, 성서의 문자적 해석에 익숙하던 문익환 목사는 성서를 학문적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는 성서비평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경청하지 못하면 학문을 할 자격이 없다"라는 교수의 충고로 문익환은 성서비평학을 학문으로 존중하게 됐다.

1947년에 한국신학대학교(현재 한신대학교)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친구이자 사회운동가인 장준하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70년대~1980년대 국민들을 군대의 힘으로 억압하는 군부독재정권에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등 여러차례 저항하여 수차례 투옥됐다.

1978년 윤보선이 일본에 체류중인 정경모를 통해 국민연합 일본지부를 세우려 할 때, 문익환은 '아직도 그의 사상을 믿을 수 없다'라며 반대했다.

스승 김재준 목사가 정경모를 강력히 추천했을 때도 문익환은 그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의 강력한 반대로 국민연합 일본지부 결성은 무산됐다.

정경모는 일본으로 건너간 후 한민통의 신문 편집장을 했는데, 문익환은 그가 조총련 신문 편집장을 하고 있다고 오해했던 까닭에 이를 극렬 반대했던 것이다.

후에 문익환이 '도쿄에서 만난 그리운 아우 정경모'를 사상적으로 의심하지 않고 다시 흉금을 터놓은 관계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정경모의 저서 찢겨진 산하 때문이었다.

1979년 10월 유신 정권 붕괴 이후 문익환은 한동안 강경투쟁 노선에서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1985년 3월 29일 재야 민주세력 결집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으로 선출됐다. 

1986년 5월 20일 서울대학교 5월제에서 연설하던 중 이동수 학생의 분신 투신으로 구속되었다가 1987년 7월 8일 형집행 정지로 출옥했다.

군사독재정권이 붕괴되자 문익환 목사는 다시 통일운동을 개시했다.

1989년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당시 진보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따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귀국하였으나,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방북했으며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한국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방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잠입죄’로 투옥, 1990년 10월 20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그러나 이후 공안정국을 조성한 정부에 의해 1991년 6월 6일 재수감되었다. 이후 1993년 초 석방된다.

이후, 활발한 통일운동과 강연활동을 벌이던 중 1994년 심장마비로 사망, 문익환 목사를 존경하는 지식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부인으로 박용길 장로, 형제로 역시 재야운동가인 문동환 목사, 아들로서 극작가 문호근과 배우 문성근이 있다.

▲ 상훈

1990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이 수여됐다.

2002년에는 사회, 통일 운동에 대한 업적이 인정되어 서남동, 안병무와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2007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임옥상 화백이 제작, (사)통일맞이가 기증한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출처 : 위키백과 / 인터넷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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