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월19일]“잊지 말아 주세요.”... ‘당포함’ 생존자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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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월19일]“잊지 말아 주세요.”... ‘당포함’ 생존자들의 절규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1.01.19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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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1967년 오늘 해군 56함 당포함은 동해상에서 명태잡이 민간 어선단을 보호하다 북한 해안포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승선인원 79명 중 39명이 전사했고 조업하던 수백 척의 어선들은 당포함의 희생으로 무사히 대진항으로 귀항했다.

전사자들은 해군장으로 영결식을 엄수하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매년 1월 19일에 강원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당포함 전몰장병 충혼탑에서 추모식이 거행되고 있다.

당포함의 최후 [사진제공=해군]
당포함의 최후 [사진제공=해군]

▲56함 명태잡이 어로보호 작전 수행

해군 함대 제1 전단 소속 당포함( PCE 56함 650톤급, 함장 김승배 중령, 승무원 79명)은 동해 경비 임무를 띠고 1966년 12월 28일 오전 9시에 진해항을 떠나 동해 북방경계선에서 명태잡이 어로보호 작전을 수행하고 1967년 1월 15일 임무를 마치고 귀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해 날씨가 좋지 못해 출어일 수가 줄어 평년 어획량보다 1000톤이나 감소하자 당국은 1월 말까지 어로 기간을 연장하였기에 당포함은 수산청장의 요청에 의거, 1967년 1월 31일까지 작전 연장근무를 해야만 했다.

이들의 임무는 우리 어선들이 어로 저지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가끔 월선하는 어선이 북한 경비정들에 의해 북으로 납치되는 것을 보호하고 어민들이 안전하게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명했던 그 날 어선 수백 척이 명태 어장에 몰려 부진했던 어획량을 만회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해상 휴전선을 넘나들며 조업을 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북한 경비정 2척이 선단 쪽으로 접근하자 당포함은 북한 경비정이 어선을 납북해 가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북쪽으로 전진하자 북한 해안가 포진지에서 기습적으로 122㎜ 해안포 10여 문이 당포함을 향해 일제히 포격하였다.

이에 당포함도 즉시 대응 사격을 했으나 당포함의 무장은 3인치(76.2㎜) 포 1문, 40㎜ 6문, 20㎜ 4문에 불과해 화력 면에서 상대가 되질 않았고, 40㎜와 20㎜ 기관포는 북한군 포대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며 3인치 함포는 북한군의 포탄에 조기에 제압되었다. 게다가 북한군 포들은 해안의 진지에 잘 은폐되어 있어 당포함의 포탄은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이때 급히 달려온 한국 해군 53함이 3인치 함포 등으로 100여 발을 쏘면서 응전하며 56함에 접근하여 예인을 시도하였으나, 이미 포탄에 선체와 기관실이 대파된 56함은 우현으로 기울면서 북위 38°39′45″, 동경 128°26′47″ 해상에서 이날 오후 2시 34분에 침몰했다.

함장 김승배 중령은 이와 같은 사실을 근해에 있던 PCE 53함에 타전하고 전 수병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렸고 53함은 북한의 포격이 멎자 즉시 56함의 승무원 구조 작업에 나섰으나 승조장병 79명 중 함장을 포함한 장병 40명은 구조됐고 39명이 전사했다.

▲기억하자... 당포함

1월 20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 회의에서 유엔은 PCE 56함에 대한 포격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공동 조사를 제의하였으나 사회주의 진영은 1월 21일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중립국 휴전 감시위원단의 사건 조사를 거부했다.

또한 북한 측은 오히려 우리 56함이 침범했으며 격침한 것은 자위적 행위라는 상투적인 궤변을 늘어놓으며 56함의 침몰 뒤에 한국 해군 71, 66, 53함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처벌을 요구했다.

당시 온 국민들은 56함의 격침에 대해 북한에 분노하며 그들의 만행을 규탄하였고, 김영관 해군참모총장은 21일 기자 회견을 하고 북한의 어떠한 도발 행위도 용납지 않을 것이며, 동해를 비롯한 해군 전 함정에 비상 전투태세를 명령했다.

또한 정부는 어로보호 업무를 해군에서 농림부와 내무부로 이관하고, 1968년까지 동해안 2개 지역에 제트기의 운용이 가능한 공항을 신설할 것을 발표했고. 침몰한 당포함을 대신할 함정으로 미국으로부터 PCE 50함을 인수하여 ‘거진함’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해군 본부는 침몰 해역은 휴전선 부근이고, 수심이 210m여서 인양 작업은 불가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유해를 찾지 못한 28명의 전사자는 아직도 그들의 애함인 당포함과 함께 동해의 깊은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당시의 생존자들은 “우리는 당포함을 잊고 살다가 천안함 사건으로 또다시 46 용사를 잃었다. 더는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당포함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절규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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