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월 11일] 인권변호사의 대부 '이돈명'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 1월 11일] 인권변호사의 대부 '이돈명'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1.11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돈명 변호사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이돈명은 대한민국 판사출신 법조인이다.

1922년 전라남도 나주 다시면에서 태어난 이변호사는 1946년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인 조선대학교의 전신 광주야간대학원에 입학하고 재학 중인 1948년 조선변호사 예비시험에 합격했다.

1950년 조선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5.16쿠데타 이후 법관직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963년부터 법복을 벗고 다른 세 변호사와 함께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고 민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민청학련 사건)을 맡은 황인철, 홍성우 변호사에게 찾아가 변론에 동참하게 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해 12월 23일, 세종로 성당에서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는다.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8세의 폭거에 맞서 양심을 지키다가 목이 달아난 법률가의 수호성인으로서 그에게 꼭 맞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변호사는 죽기 직전에도 망나니에게 “내 수염은 죄가 없으니 살살 다뤄주게나”라고 농담을 했던 수호성인처럼 농담과 흥을 좋아했다. 

변호사로서 처음 법정에 선 것은 1975년 시인 김지하의 반공법위반 사건이었다.

이후 3·1민주구국선언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반공법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 사건, 송기숙 등의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사건, 통혁당재건사건, YH 사건, 10·26사건의 김재규 변호, 전민학련·전민노련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 대우자동차 파업사건,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1970~80년대의 주요 시국사건의 변론을 하여 '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리기도 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조선대학교 8대 총장을 역임했다. 

2011년 1월 11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였다.

*출처 : 위키백과 / 온라인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