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월 7일] 전기·전자·통신 세기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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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월 7일] 전기·전자·통신 세기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1.01.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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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전자기학의 혁명적인 발전을 가능케 한 '니콜라 테슬라(1856년 7월 10일~1943년 1월 7일)'가 사망한 날이다.

테슬라는 라디오를 통한 무선 통신을 1894년 최초로 실현시켜 특허청에 1897년 10월 2일에 출원했고 1900년 3월 5일 승인되어 무선통신의 아버지로 불린다.

테슬라의 특허와 이론적 연구는 전기 배전의 다상시스템과 교류 모터를 포함해 현대적 교류 시스템의 기초를 형성했고 이러한 연구는 2차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자기장의 국제단위 ‘테슬라’는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것이다.

▲ 생애

니콜라 테슬라 (1896년)
니콜라 테슬라 (1896년)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7월 1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을인 스밀리안(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정교회의 성직자였던 아버지 미루틴 테슬라에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테슬라는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가재도구나 농사도구를 직접 발명해 쓸 정도로 발명에 재능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훗날 어머니에 대해 “누구보다도 뛰어난 발명가이셨다, 만약 좋은 환경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셨다면 이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기셨을 것이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1875년에 그라츠 공과대학에 들어갔고 발전기와 모터의 기능을 같는 ‘그람 다이너모’라는 직류기계장치를 보고 독일인 교수 포에쉴로의 전기장치에 푹 빠져 직류 대신 교류로 작동하는 장치를 구상해 교류 전기 장치 개발의 시초가 된다.

▲ 교류 시스템 발명

연구소의 테슬라 (1900년)
연구소의 테슬라 (1900년)

1881년 테슬라는 부다페스트에 국영 전화국의 기술자로 일하던 중 엄청난 아이디어가 마치 계시처럼 그의 머리에 떠올라 해가 지는 모습에 취해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걷다가 갑자기 땅 위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내 모터야”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교류 모터의 작동 원리를 발견하고 이듬 해 파리로 건너간 테슬라는 콘티넨탈 에디슨 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조잡하나마 최초의 교류 유도 모터를 제작했고 몇 차례 실험을 통해 그것이 토마슨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1884년 그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동료가 써준 추천서 덕분에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근무 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둔다. 그의 능력과 집중력만큼은 에디슨도 인정했지만 직류와 교류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다. 에디슨은 철저한 직류 신봉자였고 교류에 집착하는 테슬라와는 거리가 있었다.

▲ 에디슨과 ‘전류 전쟁’ 

에디슨과 결별한 테슬라는 1885년에 조지 웨스팅하우스에게 교류 관련 장치들의 특허권을 팔고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 사이의 그 유명한 ‘전류 전쟁’을 시작했다.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시스템이 사용되기 시작하면 6개월 안에 틀림없이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에디슨은 개나 고양이를 교류에 일부러 감전사시키려는 식으로 교류의 위험성을 과장 선전을 했지만 승리는 교류 쪽으로 기울여졌다.

시카고 세계 박람회를 밝힐 전기로 교류가 채택됐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에 교류 시스템이 적용됨으로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에게 받은 돈으로 개인 실험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원격 조정으로 움직이는 자동 보트, 고주파 유도 코일인 테슬라 코일 등을 발명했다.

1900년 존 피어폰트 모건에게 투자를 받아 전세계로 통신을 할 수 있는 무선전신탑을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이 계획은 모건의 지원 철회로 중단됐다.

이후 그의 머리 속에 들어있던 수많은 구상들은 자금 부족 때문에 거의 대부분 실제로 구현되지 못한 채 노트 속에만 남게 된다.

▲ 세기의 발명가

테슬라의 동상
테슬라의 동상

1915년 에디슨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될 거라는 언론 보도가 연이어 났지만 노벨상은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테슬라가 에디슨과의 공동 수상을 거부했다는 주장도 있었고 테슬라가 상금을 받지 못하도록 에디슨이 계략을 꾸몄다는 주장도 있었다.

2년 후, 테슬라는 미국 전기공학자 협회가 주는 ‘에디슨 메달’을 여러 번의 거절 끝에 수락했고 시상식 자리에서 “에디슨은 이론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사전에 그 어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혼자 힘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기공학자 협회 회장은 그날 “그의 연구가 있었기에 뢴트겐의 위대한 발견이 나올 수 있었고 그의 연구가 나온 이후부터 톰슨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업적을 이루어 현대 물리학의 개념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며 “테슬라 씨는 마르코니의 연구보다 앞섰으며 무선 전신과 기타 여러 과학 기술 분야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고 표현했다.

그는 1943년 1월 8일 호텔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고 검시관은 그가 1월 7일 오후 10시 30분에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1891년 6월 23일 전기 조명 시스템으로 받은 미국 특허를 비롯해 25개국에서 적어도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말 그대로 세기의 발명가였다.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세운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테슬라 모터스’에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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