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월12일]'뜸북뜸북 뜸북새... 오빠 생각‘ 작곡한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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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월12일]'뜸북뜸북 뜸북새... 오빠 생각‘ 작곡한 박태준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1.01.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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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1901년 오늘(음력 1900년 11월 22일) 한국 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긴 대표 동요 작곡가 ‘박태준’이 출생했다. 

그의 작품은 정돈되고 아름다우면서 격정이 내재되어 있으며, 150여 편의 가곡과 동요를 작곡했다. 1925년부터 본격적인 동요 작곡과 발표에 열의를 보인 그는 연세대 음악대학 초대 학장과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박태준 (사진제공=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태준 (사진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 대표 동요

대구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박순조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기독교계인 계성중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워 ‘가을밤’, ‘골목길’ 등 동요의 초창기 작품으로 평가되는 13곡을 동요를 작곡했다.

1921년 숭실전문학교 졸업 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시인 이은상의 시를 가사로 ‘미풍’ㆍ‘님과 함께’ㆍ‘소나기’ㆍ‘동무 생각’ 등을 예술가곡 형태의 노래를 작곡했다. 이 시기 그의 작곡 형식은 진취적이고 시의 선택도 유절 가곡에서 자유스러운 형태를 채택하여 우리나라 예술가곡의 효시라 볼 수 있다.

1924년에서 1931년까지 모교인 대구 계성중학교에 재직하면서 ‘오빠 생각’ㆍ‘오뚝이‘ㆍ‘하얀 밤’ㆍ‘맴맴’ 등 우리나라 동요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작곡하였으나, 이 가운데 윤복진의 작사에 곡을 붙인 50여 곡의 작품들은 윤복진의 월북 관계로 1945년 이후 가사가 바뀌거나 또는 금지되기도 했다.

▲제2기 음악 세계

그는 1932년 미국 터스칼럼(Tusculum)대학과 웨스트민스터 음대에서 교회 음악과 작곡을 전공했고 합창 지휘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임 생각’을 비롯한 몇 편의 가곡을 작곡했고, 해방 전까지 무려 70여 편의 동요를 작곡했다.

1936년 귀국해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일제 말에는 민족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년 전문 합창단인 한국 오라토리오 합창단을 창단하여 1973년까지 지휘자로 활동하며 합창음악 발전에 기여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 남대문교회 성가대도 지휘했다.

1958년 연세대학교에 종교 음악과를 개설하여 기독교 음악교육의 초석을 쌓고,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및 명예교수를 역임했고 1968년 한국음악협회 회장을 하면서 서울음악제를 창설했다.

그는 ▲제6회 서울시 음악 문화상(1957) ▲제6회 예술원 음악 공로상(1960) ▲대통령상 문화훈장(1962) ▲국민훈장 무궁화장(1970) ▲1982년 MBC에서 제정한 제2회 가곡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3년 제7회 월남 상(月南賞)과 1984년 한국 아동 음악 공로상을 받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집 생각‘ㆍ‘고향 하늘’ㆍ‘누나야 보슬보슬 봄비 내린다‘ㆍ‘등대‘ㆍ‘종달새’ㆍ‘새 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다.

 

*출처: 다음 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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