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월 6일] 제26대 법무부 장관 '이선중'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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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월 6일] 제26대 법무부 장관 '이선중' 타계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1.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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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이선중(1924년 1월 20일 ~ 2020년 1월 6일)은 제26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법조인으로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1947년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그해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됐다.

  이선중 법무부 장관

▲ 주요 사건

검사시절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전쟁 때 부역한 1,000명을 조사해 약 300명을 구속 기소했다. 

1951년 8월 전주제사공장 수사를 상부로부터 하달 받고 조사한 결과 적산 관재과 에서 이미 검사해 장부가 완비되어 있었고 회사 공금을 비공식적인 접대에 사용한 기록은 있으나 영득의사 없이 한 일이라 불기소 의견을 상부에 제시했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죄를 밝히라고 명했지만 그는 본인 소신껏 사건을 처리했다.

대검찰청 검사(1965년10월~66년4월)로 근무했을 당시 그는 삼성물산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담당해 당시 이창희 한국비료 업무당당 이사를 구속했다.

▲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역임

검찰총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검찰은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는데 주요 임무가 있으므로 국가의 존립과 유지 발전을 해치는 범죄는 엄격히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중죄에 대해서는 엄벌하고 가벼운 죄에 대해서는 관용하는 등 기소 편의주의를 계속 활용 하겠다"고 했다.

1976년 4월 9일 춘천지방검찰청을 찾은 자리에서 그는 "광산 사고에서 말단 보안 관리자만 처벌하여 경영주들이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소흘히 했다"며 "광산 사고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시설 미비 등으로 인한 광산 사고에 대해서는 경영주도 형사 입건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노임 체불이 근로자 생계를 위협하고 농성 등 집단 사태를 일으켜 사회 안정, 국민총화를 해치는 사회악"이라고 하면서 "엄중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모교 특강 이선중 장관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시절 항상 국민 인권보호에 주력하고 국가정책반대금지를 입법화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가능하다고 건의했다.

1950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60년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1962년 4월 11일 ~ 1963년 5월 30일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1963년 5월 31일 ~ 1964년 3월 16일 제14대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 1964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 1966년 법무부 법무실장 겸 대검찰청 검사 / 1971년 법무부 차관 / 1973년 3월 9일 법제처장 / 1975년 검찰총장 / 1976년 12월 4일 ~ 1978년 12월 21일 제26대 법무부 장관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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