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2월28일] "여기는 정상, 더이상 오를 데가 없다." ...산악인 '고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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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12월28일] "여기는 정상, 더이상 오를 데가 없다." ...산악인 '고상돈'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0.12.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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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1948년 오늘 태어난 고상돈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8,848m)을 등정한 최초의 한국 산악인이었다. 

제주특별시에서 출생, 충북 청주에서 성장했다.

청주대학교 시절, 산악반에서 전문적 등반 훈련을 받았었다.

중퇴 후 청주 연초 제조창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며 직장 내에 '상당 산악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1970년 3월에는 대한 산악 연맹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1974년~1977년까지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 훈련에 참가했다.

1975년엔 제1차 정찰대로 에베레스트 산 현지 훈련에 참가하고 1977년,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 정규 대원으로 선발된다. 

1971년 네팔 정부에 입산허가서를 제출한 지 6년 만인 1977년에 등반할 수 있었고, 그해 9월 15일 낮 12시 50분 에베레스트 산을 한국인 최초로 등정했다.

그로인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당시 고상돈이 한 말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였다.

정상의 눈을 손으로 파헤친 뒤 성서(성경) 한 권과 사진 석 장을 묻음으로써 먼저 간 동료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1979년 알래스카 산맥(Alaska Range)의 디날리 산(6194m) 원정대에 참가해 1979년 5월 29일 등정에 성공하였으나 하산 도중, 이일교(李壹敎)와 함께 1,000m아래로 추락하여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박훈규는 목숨은 건졌으나 10개의 발가락과 7개의 손가락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제주도에서는 1100도로의 일부구간을 고상돈로라 명명해 그를 기리고 있으며 그의 묘소는 기념비, 동상과 함께 고상돈로의 중간인 1100고지 휴게소에 위치해 있다.

그가 죽은 후, 고상돈대원 기념사업회가 조직돼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2년 6월 에베레스트 산에서 청소활동을 벌이던 단체에 의해 고상돈 원정대의 깃발이 발견되었는데, 깃발에는 '77 K.E.E(77: 등반연도, K.E.E: Korea Everest Expedition)'라고 씌어 있었다.

1977년 10월 6일 청년대상, 체육훈장 청룡상을 받았다.

*출처 : 위키백과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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