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2월25일] 근대 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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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2월25일] 근대 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 출생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12.25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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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아이작 뉴턴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642년 12월 25일은 영국의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와 천문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이 태어난 날이다.

뉴턴은 물리학과 수학의 주요 이론을 확립했으며,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촉발된 17세기 과학혁명의 중심에 선 근대 과학의 선구자로도 불린다.

그는 1687년에 출판된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근대역학과 근대천문학을 확립했다.

지구와 사과사이에, 지구와 달 사이에, 태양과 목성 사이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힌 것도 뉴턴이 시발점이다.

뉴턴은 그밖에도 1660년대부터 빛과 색깔에 대한 독창적이고 근대적인 이론을 주창했고, 이를 1704년에 ‘광학’에 집대성했다.

▲ 뉴턴의 출생과 어린 시절

뉴턴은 영국 링컨셔(Lincolnshire)의 울즈소프라는 곳에서 한 지주의 유복자로 출생했다.

부유한 농부였던 뉴턴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사망했으며, 조산아였던 뉴턴은 몸집이 매우 작았다고 한다.

3년 뒤 어머니가 성직자와 재혼하면서 농장의 할머니에게 맡겨졌으나, 양부가 사망한 후 다시 형제들과 어머니 곁에서 자라게 된다.

뉴턴은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내면세계에 깊이 침잠해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시간들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평생에 걸친 뉴턴의 성격이 되어 버렸다.

▲ 학자로서의 첫 발

뉴턴의 모친은 뉴턴을 농부로 만들려 했으나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 그는 19살이 되던 1661년에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다만 당시의 대학은 실험이나 수학을 중요시하는 오늘날과 달리, 논리에 따라 주장을 펴 나가는 논쟁, 토론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기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최신의 학문을 배우고자 했던 뉴턴에게 정작 대학은 많은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1663년 최초의 루카스 수학 석좌교수로 막 부임한 배로의 기하학과 광학 강의를 들은 것을 계기로 뉴턴은 혼자 갈릴레오의 역학, 케플러의 광학과 천문학, 보일의 색깔론,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 광학과 기하학에 대한 저술을 공부했다.

뉴턴은 자연현상을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했던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에 매료됐다.

▲ 고향에서 얻은 깨달음

뉴턴은 재학 도중 영국 전역에 흑사병이 유행하자 학교가 휴교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1665년부터 2년에 걸쳐 깊은 사색을 통하여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했는데 중력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미적분의 계산법을 발견하였으며, 빛의 색을 탐구했다.

그가 과수원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진위가 불분명하나, 뉴턴은 말년에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복학 이후 반사 망원경을 만들고,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돼 활동한 뉴턴은 1669년 스승 아이작 배로의 교수직을 승계하게 된다.

1666년 그는 유분법을 발견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미적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적분 계산법을 누가 먼저 발견하였는지에 대하여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 빛의 파동설을 주장한 네덜란드의 호이겐스에 맞서서 빛의 입자론을 주장했으며, 빛과 색에 대한 연구로 광학 발전에 크게 기여, 1704년에 ‘광학’을 저술했다.

▲ 근대 이론물리학의 초석이 된 프린키피아

1687년 뉴턴은 에드먼드 핼리의 지원으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뉴턴의 세 가지 법칙인 관성의 법칙,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만유인력과 천문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만유인력에 대해서 뉴턴은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으나, 20년이 지나서야 ‘프린키피아’에서 구체적으로 이론화하게 됐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근대 이론물리학의 초석을 놓은 혁명적 저서로 평가받는다.

1689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뉴턴은 왕립 조폐국의 이사와 왕립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727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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