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2월 24일] 최초 외국인 천주교 선교자 ‘주문모 신부’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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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2월 24일] 최초 외국인 천주교 선교자 ‘주문모 신부’ 입국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0.12.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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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청나라의 주문모(1752년~1801년 5월31일) 신부가 사제로 국내에 처음 입국한 날이다.

장쑤성 쿤산현 출생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일찍 천주교에 입교한 그는 베이징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된 후 1794년(정조 18) 베이징주교 구베아의 명을 받고 잠입을 결행했다.

그해 12월 24일 조선인 신자 지황, 윤유일 등의 안내로 조선에 입국 했다.

주 신부는 한국 교회 역사에서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 기독교 선교자'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며 세례명은 야고보이다.

▲ 입국

주문모 신부 동상
주문모 신부 동상

조선에 천주교회는 '중국 교구'로 1784년에 청나라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한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과 김범우 등은 임의로 교계제도를 제정해 천주교 미사를 드렸다.

1789년 그들은 교리 문답을 하던 도중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천주교 교회법’에 합치하는지 의문이 생겨 윤유일을 보내 천주교 베이징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1790년 구베아 주교는 가성직제도로 교회법을 어긴 사실에 대해서는 책망했지만 그들의 열정적인 신앙은 칭찬해 조선에 천주교 신부를 보내 주기로 결정하고 조선에 제사 금지령을 내렸다.

천주교 신도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의 신주(神主)를 불사르자 조선 조정에서는 천주교회를 조선의 전통적인 유교에 반대하는 사학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처벌했다. (신해박해, 1791년)

베이징교구에선 1793년 오 신부를 보냈으나 신해박해의 여파로 조선 입국에 실패한 후 병사해 구베아 주교는 조선 사람과 매우 닮은 주문모 신부를 보내기로 했다.

1794년(정조 18년) 봄 북경을 떠난 주문모 신부는 그해 음력 12월 3일(양력 12월 24일) 조선인 신자 지황(池璜)·윤유일(尹有一) 등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한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서 왔기 때문에 북경에서 국경까지 10개월이 넘게 걸렸고 주 신부는 12일 만에 서울에 잠입해 북촌 계동에 있는 최인길의 집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미사를 집전했다. (국경을 넘은 지 6개월 만에 도착했다는 주장도 있다)

▲ 선교 활동

주문모 신부 묘비

1795년 6월까지 세례성사를 주고 전교하다 배교자 한영익의 밀고로 체포령이 내려져 역관 최인길의 도움을 받아서 도피하고 여성 교우 강완숙이 자신의 집을 은신처로 제공해 피신했다. 주 신부 대신 검거된 역관 지황과 윤유일은 붙잡혀 순교했다.

주 신부는 강완숙에게 세례를 주고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여회장으로 임명과 복음을 전파 활동에 여종을 비롯한 수 많은 여인들을 천주교로 인도했다.

양반신분을 활용해 은언군의 부인 송씨, 며느리 신씨가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하고 주 신부는 교리 연구회인 명도회(明道會)를 만들어 정약종을 회장에 임명하고, 황사영을 비롯한 홍필주, 현계흠, 홍익만 등을 명도회 하부 조직인 육회의 책임자로 임명해 교리 연구와 전도에 힘쓰게 했다.

주 신부는 지방으로도 발길을 옮겨 죽은 윤유일의 가족을 위로하고 경기도 여주, 충청도 온양, 공주, 남포, 내포, 전라도 전주에서 전교해 신자 수가 1만 명으로 증가했다.

정순왕후의 ‘사학엄금교서’ 발표로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주 신부는 자신의 소재지를 알리지 않는 강완숙(골룸바)의 보호로 몸을 피했으나 황해도 황주에서 사태가 매우 좋지 않음을 알게 되어 1801년 4월 24일 한양으로 돌아와 의금부에 자수했다.

주문모 신부는 그해 양력 5월31일 “살아 있어서 도움이 안 되니 죽기를 원한다”라는 말과 함께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2014년 8월 16일 시복됐다.

▲ 영향

주문모 신부는 자신의 조선 입국 전까지 신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한 평신도들이 목회한 조선 천주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교리서와 신앙 안내서라고 생각해 ‘사순절과 부활절을 위한 안내서’라는 고해성사 지침서 등을 저술했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3리 322-4번지 어농성지에 한국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의 기념상과 묘비가 있다. 그는 한국 천주교회 확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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