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2월29일]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 ‘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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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2월29일]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 ‘이구‘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12.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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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1931년 오늘 영친왕과 이방자(자행비) 여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대한제국의 직계 황족이자 마지막 적통 직계 손인 이구가 출생했다.

아버지 영친왕이 사망하자 황실을 이어갔으며, 종묘대제를 주관하는 등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명예총재로 활동했다.

종약원과의 양자 선임 문제와 한국에 적응하지 못해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2005년 7월 16일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구 (1931 - 2005)

 

▲굴곡진 삶

영친왕과 이방자 사이에는 첫아들 이진이 있었지만 1922년 5월 11일 사망하면서 이구는 태어날 때부터 왕의 후계자로서 '이왕세자'라 불렸으며 그의 시호는 회은(懷隱)이다.

1947년 일본국 헌법의 제정으로 인해 일본 황실 직계를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과 대한제국 황실은 신적 강하되어 영친왕과 이구는 왕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영친왕은 두 번의 국내 귀국을 시도했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그의 입국을 반대한 미군정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한 이승만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 처분을 받아 이구는 일본에서 계속 체류하며 1950년 도쿄의 일본 왕공족 귀족학교 학습원 고등과를 졸업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되어 일본은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주장을 포기해야 했다. 그 때문에 조선인에 대한 일본 국적이 자동 박탈되었고 이구 역시 일본 국적이 박탈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1953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건축학을 전공하며 미국 유학생활 중 그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 멀록과 교제를 하게 되고 1956년 MIT 건축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아이엠페이(IMPEI) 건축사무소에 입사한 후 1959년 10월 25일 8년 연상의 줄리아 멀록과 결혼한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야 그는 뇌내출혈로 혼수상태였던 아버지 영친왕과 이제는 한국인이 된 이방자 여사와 함께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했으며 1965년부터 대학가에서 건축 설계학을 강의했다.

1970년 아버지인 영친왕이 사망한 후 1971년 영친왕 기념사업회를 설립하였고 1973년 3월 사단법인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총재에 추대되고 같은 해 신한항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였지만, 사업에 실패한 후 1979년 일본으로 떠났다.

종친들은 후손이 없고 백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강요하여 1982년 멀록과 이혼했고 1996년 영구 귀국하여 종묘대제를 주관하는 등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명예총재로 활동하였다.

그는 종친들과의 갈등과 한국 적응의 실패로 주로 미국과 일본에서 생활하다 2005년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저택이 있었던 장소로 일본 패전 후 영친왕의 경제 능력 붕괴로 처분했다.

또한 그는 몸이 시커멓게 변한 상태에서 발견됐으나 당시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후 일본은 한국에 알리지 않고 유해와 내장을 표백하고 방부제 처리해 그의 죽음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5년 7월 24일 대한민국 국무총리 및 문화재청장 등 각계 인사들과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창덕궁 희정당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고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뒤편 영원(英園)에 안장되었다.


 

*출처: 다음 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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