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0월 28일] ‘윤금이 피살사건’...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 운동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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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0월 28일] ‘윤금이 피살사건’...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 운동 촉발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10.28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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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윤금이 피살 사건은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윤금이(당시 26세)가 주한 미군 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윤금이

▲ 사건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윤금이가 1992년10월28일 오후 4시30분경 나체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발생하자 의정부 경찰서 강력계 형사1부에서는 현직 형사 40명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미군 측에서도 군 수사대를 출동해 한·미 합동으로 수사를 했다.

윤씨의 자궁 속에서(시체 부검 중)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당시 윤씨의 시신에 직장에 우산 27cm 가량 박혀 있었고, 자궁 내부에는 두 개의 맥주병이 들어 있었으며 음부에는 콜라병이 절반쯤 꽂혀 있었다. 입에는 부러진 성냥이 물려져 있었으며 전신에는 세탁세제 분말이 뿌려져 있었다.

윤 씨의 부검중 자궁 속에서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이에 따른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얼굴의 함몰 및 그로 인한 과다 출혈이었다.

범인 케네스 마클이병<br>
범인 케네스 마클이병

범인 케네스 마클 이병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994년 5월 17일 천안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2006년 8월 14일 가석방되어 미국으로 출국 했다.

당시 무기징역선고에서 15년 감형은 윤 씨의 유족이 미 정부로부터 7천1백만 원의 배상금을 수령해 이른바 민사절차가 마무리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로인해 당시 주한 미군의 범죄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었으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대한 개정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 미군 위안부

오늘날 한국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뿐만이 아니라 미군 위안부 모두를 일컫는 말이었다 미군 위안부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 매매했던 여성들을 말한다. 또한 양공주, 양갈보, 양색시, 유엔마담, 히빠리, 주스 걸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미군위안부<br>
미군위안부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정부가 외화를 벌기 위해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을 직접 관리 했다는 사실이 2013년 11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유승희 의원에 의해 밝혀지기도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 결재한 '기지촌 정화대책'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로 사실이 확인 됐다.

미군 위안부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상당수가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미성년자들이었다.

미군 위안부 중에 미군 병사와 연인이 되어 결혼 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미군 위안부들은 미군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이에 병사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도 매우 많았다.

오늘날 위안부라는 말이 국가에 강제로 동원된 여성을 뜻하는 말로 쓰여 지고 있어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논쟁도 있다.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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