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0월9일]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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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0월9일]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10.09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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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446년 10월 9일(양력 기준)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날이다.

즉위 25년째인 1443년, 세종대왕은 궁중에 정음청(正音廳)을 두고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문자를 창제했다.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간된 이 날은 오늘날까지 한글날로 지정돼 기념행사가 열린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은 '백성(民)을 가르치는(訓) 바른(正) 소리(音)'라는 뜻으로, 독창적이며, 쓰기 편한 28자의 소리글자였다.

세종의 서문과 정인지 서(序)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훈민정음은 한문 의존에 따른 어려움을 근본부터 극복하기 위해 한국어의 고유 문자로서 창제됐다.

▲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

1443년 음력 12월, 한자에 오랫동안 의존해 왔던 우리나라는 문자혁명의 결실을 보게 되는데, 훈민정음 창제의 취지는 세종이 손수 저술한 예의편(例義篇) 첫머리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로 한국어는 중국말과 다르므로 한자를 가지고는 거의 제대로 표기하기 어려우며, 둘째로 우리의 고유한 글자가 없어서 문자생활의 불편이 매우 심하고, 셋째로 이런 뜻에서 새로 글자를 만들었으니 일상생활에 편하게 쓰라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5년 뒤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간행되는데, 당시 조선에서 통용되던 한자음을 중국어 원음으로 교정하기 위한 책으로서 이것의 발음 표기에 훈민정음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가 한자 및 한문의 폐지를 목적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훈민정음의 활용 범위가 상당히 넓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만리를 비롯해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신하들도 있었으나 세종은 이에 "경이 운서를 아는가?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는가? 만일 과인이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 한글의 기본 원리

모음은 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는데 'ㆍ'는 양(陽)인 하늘(天)을,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떴으며,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낱자 28글자와 성조를 나타내는 기호(방점)가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ㅿ, ㆁ, ㆆ, ㆍ 네 글자와 성조 기호(방점)가 사라져서 24글자가 됐다.

한글이 보급되면서 주로 일반 백성과 여자들이 편지나 계약서 등에 한글을 썼고, 궁궐에서 주고받는 문서에 한글을 쓰기도 했다.

조선시대 한글은 한자를 제외한 글이라는 의미의 '언문'이라고 불렸으며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으므로 ‘암클’이라고도 했다.

반세기쯤 지난 1500년대에는 지방의 노비 수준의 신분인 도공에게까지 한글이 쓰였다고 한다.

양반이나 식자층 사이에는 천시됐으나, 연산군의 경우 훈민정음을 아는 사람을 일부러 궁궐에 등용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 ‘언문’에서 ‘한글’이 되기까지

율곡 이이는 1749년 <대학>에 구결을 달고 언해한 <대학율곡언해>를 발간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가사 문학, 한글 소설 등 한글로 창작된 문학이 유행했고, 서간에서도 한글/정음이 종종 사용됐다.

1894년(조선 고종 31년) 갑오개혁에서 마침내 한글을 ‘국문’(國文)이라고 지정, 1894년 11월 21일 칙령 제1호 공문식 제14조 및 1895년 5월 8일 칙령 제86호 공문식 제9조에서 법령을 모두 국문을 바탕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 쓰도록 했다.

1907년 7월 8일 대한제국 학부에 통일된 문자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한국어 연구 기관으로 국문 연구소가 설치된다.

민간에서는 1906년 주시경이 <대한국어문법>을 저술하는가 하면 1908년 최광옥의 <대한문전>, 1911년 김희상의 <조선어전> 등이 발간되며 문법 체계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이를 집대성한 책이 1937년 최현배의 <우리말본>으로, 조선어학회에서 주시경이 지은 ‘한글’이란 명칭이 널리 쓰인 것도 이 무렵이다.

▲ 오늘날 훈민정음의 가치

훈민정음 언해본은 해례본에 한글 번역이 붙어있는 것을 말한다.

한문으로 되어 있던 해례본 내용에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과 예의 부분을 한글로 번역해 붙여 〈세종어제훈민정음〉으로 합본되어 있는 것이다.

해례본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지만 편의상 따로 언해본으로 불린다.

이 책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해례본> 중 예의는 특히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를 그대로 보이고 있어 가장 높이 평가되며, 오랫동안 문제로 삼던 글자의 기원 등 여러 가지의 의문점을 밝혀 주고 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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