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0월13일]‘철의 여인‘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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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0월13일]‘철의 여인‘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10.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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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 1925년 오늘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 최초로 총리직을 세 번 연임한 마거릿 대처가 출생했다.

그녀는 1970년대 큰 정부와 복지 정책으로 인해 국제통화기금을 받을 정도로 붕괴한 영국 경제를 긴축재정과 복지 지원 삭감 등을 통해 시장경제 국가로 살려냈다.

유럽 통합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여 보수당 지도부의 반발을 초래해 1990년 11월 22일 총리직을 사퇴한 후 존 메이저에게 직위를 승계했고, 2013년 4월 8일 뇌졸중 증상으로 사망했다.

마가렛 힐다 대처
마거릿 힐다 대처

 

▲철의 여인

대처는 영국의 제52대 총리로 윈스턴 처칠 이후 영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구가한 총리로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1980년대 신자유주의ㆍ시장경제 진영을 상징하는 정치 지도자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기업 활동 규제 완화, 민영화, 정부 지출 감축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경제정책으로 영국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실업률과 빈부 격차를 증가시켰고, 집권 3기 당시 인플레이션을 방치하여 경제 불황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노동자 파업 강경 진압과 1972년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의 은폐, 쿠데타로 수립된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에 대한 지지,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하는 남아공에 대한 제재를 거부한 것이 오점으로 지적된다.

1982년 2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외교와 안보에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영국의 세계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확인하였다.

국내적으로는 항상 비타협적이고 치안 유지를 위해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으나 이면에서는 협상과 타협에도 노력해 탄광노조와 정면 대결 속에서 온건파 노조와 제휴했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의 갈등에서도 겉으로는 강경 정책을, 속으로는 유화적인 대응으로 1985년에 영국 정부 최초로 '북아일랜드 협정'을 이끌어냈다. 

대처는 소득의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개인에게 일정액의 세금을 물리는 인두세 문제가 계기가 되어 총리직을 사퇴하게 되며 존 메이저 총리에 의해 인두세는 폐지된다.

영국은 그녀를 대문자 SHE라고 부른다. SHE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존경과 명예의 상징인 영국 여왕 단 한 명뿐이었으나,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자 전 세계 정치가들에게 존경받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에게 영국은 대문자 SHE를 선물했다.

또한, 1991년에는 오더 오브 메리트((Order of Merit)를 수훈했고, 1992년에 남작 작위와 1995년 가터 훈장을 받았다. 

 

*출처: 다음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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