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9월18일] '만주사변'...일본 군국주의 중국 침탈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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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9월18일] '만주사변'...일본 군국주의 중국 침탈 신호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09.1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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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을 침략하는 일본 관동군
선양을 침략하는 일본 관동군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931년 9월 18일은 제국주의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이다.

9.18 사변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류타오후 사건을 조작,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식민지화 하기 위해 벌인 침략 전쟁이다.

만주사변은 1945년까지 계속된 중국과 일본의 15년 전쟁의 시작이며,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 관동군 주둔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1905년)에 의해 만주의 창춘-뤼순간 철도의 이권을 획득했다.

만주는 이 때부터 일본의 자본투자·상품시장·중공업 원료 공급지로서 일본 이익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관동군은 일본이 건설한 남만주 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1905년부터 만주에 주둔하고 있었다.

▲ 국민당의 압박과 만주 점령

장세스가 이끄는 국민당의 압박과 세계 경제 대공황은 만주에서 일본의 이권이 타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고자 만주 전체를 침략하기로 하고 류타오후 사건을 일으켰다.

관동군은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 류탸오후에서 만철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후 만주 침략을 개시했다.

이후 일본은 1932년 1월까지 만주 전역을 점령, 3월에는 괴뢰정권으로서 만주국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일은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국제 연맹은 1933년 2월 리튼 보고서를 채택, 일본의 철병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국제 연맹을 탈퇴했다.

▲ 당시 여론과 평가

일본에서도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지식인의 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관할 하에 있는 라디오를 비롯, 신문 잡지가 엄중한 검열 하에 있었으므로 전쟁에 비판적인 언론이 공연히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낼 수가 없었다.

윤치호는 만주사변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라 홍보하자 윤치호는 이는 일본 군부의 성과 올리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일본은 이로써 정당 내각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군국주의 체제를 확립하게 됐으며,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침략 전쟁의 수순을 밟았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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