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9월8일]'드보르자크'..."보헤미아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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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9월8일]'드보르자크'..."보헤미아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9.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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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841년 오늘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작곡가로 관현악과 실내악에서 모국의 보헤미안적인 민속 음악을 표현하였고 스메타나에 의하여 확립된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알린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출생했다.

그의 주요 작품에는 ‘슬라브 무곡’(1878), 교향곡 9번 ‘신세계’(1893), ‘유모레스크’(1894)와 오페라 ‘루살카’(1901 초연) 등이 있다.

1901년엔 빈의 종신 상원의원과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1904년 뇌내출혈로 사망하여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

▲민족주의 음악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지방 프라하의 북부 블타바 강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874년 오스트리아의 작곡 콩쿠르에서 보헤미아의 민속 소재를 서양 클래식 양식에 접목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브람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이후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 폴카와 민속춤곡을 바탕으로 한 ‘슬라브 무곡’(1878) 발표하면서 보헤미아뿐만 아니라 독일 함부르크와 영국 등 유럽 여러 도시에서 사랑받으며 국제적인 명성과 경제적 안정을 얻는다.

이 곡은 음악 특유의 선율과 활기찬 리듬이 매력적인 작품으로 후에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오늘날 관현악 연주회의 앙코르곡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은 스메타나에 의해 개척되고 드보르자크에 의해 국제적인 것이 되었지만 교향시나 오페라에 민족주의 리얼리즘을 정립한 스메타나(체코)에 비해, 브람스(독일) 풍의 신고전주의를 지향한 드보르자크(체코슬로바키아)의 민족주의는 서로 다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신대륙 음악에 대한 호기심

1892년, 뉴욕 음악원의 창립자 자네트 서버가 그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초청한다. 그는 신대륙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인디언 음악, 흑인영가 등 새로운 음악을 배울 기회로 생각해 프라하 음악원에 휴가 신청을 내고 아메리카로 향한다.

그는 점차 미국 음악 특유의 매력에 빠져들어 “흑인 영가야말로 미국 음악의 중추가 될 것이고 모든 음악 작품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해 백인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드보르자크는 그런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음악의 원천인 인디언의 노래와 민속 음악의 음계나 리듬의 특성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교향곡 제9번 ‘신세계’ 작곡에 착수하는데. 이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변형시키고 자유자재로 엮어내며 음악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드보르자크의 천재적인 작곡기법이 드러나며 미국 음악의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1895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로 돌아온 뒤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복직하고 1901년 음악원 원장이 된다. 그리고 말년에 오페라와 실내악에 전념해 1901년과 1904년에 오페라 ‘루살카’와 ‘아르미다’를 발표한다.

 

*출처: 다음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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