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8월18일]비운의 천재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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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8월18일]비운의 천재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8.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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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750년 오늘 모차르트의 재능에 뒤져 2인자 또는 비운의 음악가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자신만의 음악을 고집하며 많은 음악가에게 가르침을 준 뛰어난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출생한 날이다.

그는 유년기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1774년 빈의 궁정 작곡가가 되었고 1788년에는 궁정 악장으로 임명되어, 사망 직전인 1824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할 정도로 빈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다.

살리에리가 작곡한 대부분의 오페라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했으며, 대표작은 ‘Danaises’(1784)와 ‘Tarare’(1787) 등이 있다.

특히 ‘Tarare’는 모차르트의 ‘Don Giovanni’보다 빈 사람들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으며, 1804년 마지막 오페라 공연을 끝으로 종교 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당대 최고의 음악교육자 

그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교육자의 역할이다.

그는 베토벤에게 오페라를 비롯한 성악 작법과 대위법을 가르쳤으며, 베토벤은 편지와 대화록에서 살리에리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나타냈다.

또한 일곱 살에 불과한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성을 발견한 그는 빈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슈베르트가 빈 음악원을 졸업한 뒤에도 3년 동안이나 슈베르트가 보낸 작품을 살펴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밖에 살리에리는 피아노의 귀재 프란츠 리스트와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 요한 네포무크 훔멜,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등의 쟁쟁한 음악가들을 지도했으며,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프란츠 자버 쥐스마이어와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살리에리는 이들 중 상당수가 무명시절 궁핍하여 이들을 무상으로 가르쳤으며, 또한 실직한 음악가와 사망한 음악가의 유족들을 위해 상조회를 조직하고, 자선 콘서트도 매년 개최하는 등 물질적ㆍ정신적으로 당대 후기 지수들을 위해 엄청난 투자와 열의를 보인 자선가이자 교육자였다.

▲모차르트 독살설 

1790년대 빈에는 살리에리의 독살설 등의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로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는 여러 연극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Mozart et Salieri’(1898)의 기초가 되며, 이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좀 더 세심히 다룬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1979, 영화화 1984)가 만들어진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는 질투심이 강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일인자로 인해 이인자의 열등감과 시기를 보이는 심리적 증상인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실제 살리에리는 이인자가 아닌 일인자였다. 38세 때 황실의 예배와 음악교육을 책임지는 ‘궁정 악장’으로 임명되어 일흔다섯에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 지위에 있었으며, 궁정 악장은 음악가로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최고의 직위다.

또한 모차르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살리에리에게 보내져 교육을 받은 점 또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출처: 다음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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