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8월 12일] 반일 학생운동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홍장 선생’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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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8월 12일] 반일 학생운동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홍장 선생’ 사망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08.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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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이홍장(1926년~1945년 8월12일)은 독립 운동가이다.

국가보훈처에서 수감 기록이 확인 되면서 2011년에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교복 차림에 학사모를 쓴 날카로운 눈매의 10대 소년 이홍장
교복 차림에 학사모를 쓴 날카로운 눈매의 10대 소년 이홍장

▲ 생애

그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서 거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총명했던 그는 일본 도쿄 정칙학원 중학교로 유학했다. 중학교 3학년인 1942년에 지하 결사조직이던 '일진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했다.

만주로 망명하려다 적발되면서 체포되었으며, 재판에서 '나는 이미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라며 법관을 향해 침을 뱉었다고 한다.

1944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 위반 혐의와 주모자인 데다 법정모욕죄 등이 더해져서 동료들보다 형량이 2배 긴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천소년원에서 복역 중 1945년 4월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갖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나날이 수척해진 그는 어느 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고 털어놓으면서 고문 시 전기 고문과 각종 고초를 당했고, 정체 모를 주사들을 맞았다고 말했다.

출옥하는 날에는 한 간수가 "아까운 사람아, 당신이 맞은 주사가 좋은 게 아니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좋은데 가서 사시오"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도 한다. 이홍장은 8·15 광복 3일을 앞둔 8월 12일에 사망했다. 그의 나이 19살 여름이었다.

▲ 사후

그가 사망한 이후 일본 경찰은 갖은 횡포를 부려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해 그는 뒷산에 안장되었다. 모친은 3년 후에 화병으로 사망했다.

이홍장은 일본의 횡포로 자료가 없어 오랫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동생 이창훈'이 한 향토 사학자가 쓴 삼산면 역사책에 이홍장 항목에 '반일 학생운동 주모자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병보석으로 귀가했으나 사망했다.'라는 내용의 자료를 발견하면서 차츰 추가 자료를 보완 중 국가보훈처에서도 수감 기록 확인이 되면서 2011년에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동생 이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보훈처에서는 형을 국립현충원에 모시라고 권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형님은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세상을 뜬지라 자손이 없어요. 제 자손들이 형님 무덤까지 돌보게 해야지요. 형 옆자리에 묻히는 게 이 동생의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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