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7월 23일] 원유 실은 '씨프린스호' 좌초...여수 앞바다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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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7월 23일] 원유 실은 '씨프린스호' 좌초...여수 앞바다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0.07.2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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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1995년 7월23일 전라남도 여천군(현 여수시) 남면 소리도 동쪽 8㎞ 지점에 국내로 상륙한 태풍 페이(faye)로 인해 키프로스 선적 14만톤급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암초에 부딪히며 좌초돼 5천여톤의 벙커C유와 원유를 유출시킨 사고가 발생한 날이다.

▲ 사고

씨프린스호는 14만4,567톤급의 유조선으로 길이 326m, 너비 56m, 높이 28m인 선박으로 당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용선하고 있었다.

태풍 페이는 1995년 7월17일에 발생해 7월 24일 소멸했다. 태풍 페이는 한반도의 남해도 부근에 상륙, 바람이 강한 태풍으로 발달해 중심 기압이 960 hPa로 최대 풍속은 초속 35m인 A급 태풍이었다.

원유 61만 배럴(9만7,000㎘, 약 8만5,000톤)을 실은 씨프린스호는 7월 22일 오후 6시 광양만을 출발해 서해안으로 항해하다가 7월 23일 오후 2시 20분경 전남 여천군 남면 소리도 북동쪽 1.5 km 해상에서 암초에 좌초했다.

이 사고로 씨프린스 호의 승무원 20명 중 19명이 소리도로 피신했고, 1명이 실종됐다.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120척의 함정이, 기름을 옮겨 싣기 위해 13만톤급 유조선인 호남 다이아몬드호가 동원됐 8월 8일의 작업에서 원유 19,000톤이 옮겨졌다.

8월말에는 태풍 제니스의 영향으로 선체의 위치가 바뀌었고, 원유를 옮기는 순서가 논란이 되어 작업이 지연되었다. 씨프린스는 11월 26일에 인양됐고 가라앉은 엔진은 12월 18일에 인양됐다.

▲ 피해

당시 5천여톤의 벙커A/C유와 원유가 유출됐다. 여천군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유출사고 피해는 231건, 3295㏊, 204km의 해상과 73km의 해안을 오염시켜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는 12년이 지난 2007년에도 잔존 유분이 발견되고 어족자원이 감소했다.

방제 조치 상황을 보면 해상은 1995년 7월 24일부터 8월 11일까지 총 19일간, 해안은 1995년 7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5개월간 방제 활동을 실시했다.

인원 16만6,905명, 선박 8,295척, 헬기 45대, 오일펜스 13,766m, 유화수기 126대, 유흡착제 239,678㎏, 유처리제 717.6㎘ 등이 동원됐다.

방제비용은 총 180억원이 소요됐다. 어민들은 피해 보상으로 735억 원을 청구했으나 실제 보상액은 154억으로, 외국의 경우 손해 보상율이 70% 이상인데 우리나라는 20%선에 불과했다.

▲ 사고 영향

사고 발생 수년이 지나서도 침몰 해역 밑바닥에서는 기름띠가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5년 7월 22일 개최한 ‘GS칼텍스 씨프린스호 사고 10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씨프린스호 사고 직후 기름범벅이 되어 죽은 물고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던 한 어민은 아직도 바다 밑바닥에서 기름방울들이 올라온다고 발표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오트 박사는 유출된 기름뿐만 아니라 기름 제거 작업시 사용된 유화제에 포함된 유독성 물질이 작업 인부와 지역 주민, 주변 야생동물의 건강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수환경운동연합 등 여수시의 환경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오염된 바다의 복구를 위한 각종 환경운동을 전개하고 바다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홍보한다.

이 사고로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면 기름띠를 형성해 오랫동안 바다를 죽은 바다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의 기름을 수송하는 유조선 사고가 해양 생태계에 매우 위험하다는 심각성을 인식시켜주었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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