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7월28일]‘중국 탕산 지진‘...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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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7월28일]‘중국 탕산 지진‘...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해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7.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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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976년 오늘 새벽 3시 42분에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7.8도의 지진으로 진원(震源)은 지면으로부터 2,300m이며 히로시마 원자폭탄 400개의 폭발력과 같은 강도로 23초간 지속되어 사망자 24만2,400명, 중상자 16만4,000명, 불구 3,800명의 사상자(중국 공식 발표)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문화 대혁명 말기 정권의 혼란으로 중국 정부는 지진 발생 소식을 축소ㆍ은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실제 사망자는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탕산 대지진
탕산 대지진

▲30여 년을 숨겨 온 20세기 최악의 지진

중국 탕산 대지진은 무려 30여 년을 숨겨 온 20세기 최악의 지진이었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탕산은 판과 판 사이에 놓인 도시였고, 지반에 생긴 공동으로 지표면이 내려앉는 직하형 지진이었기 때문에 도시가 한순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또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도시로 일대가 충적 평야여서 액상화 현상(물로 가득 찬 모래층이 지진과 같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입자들이 재배열되면서 수축하는데, 이때 모래가 순간적으로 액체처럼 이동하게 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당시 탕산 시에 있던 건물 대부분은 내진설계는 물론이고, 땅 아래 기반암에 뿌리를 박지 않고 지었기 때문에 지진의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1976년은 국정을 총괄하던 총리 저우언라이가 사망하고 당주석 마오쩌둥은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시기였다. 또한 1차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고, 4인방의 반격으로 부총리인 덩샤오핑이 실각하는 등 정계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1976년 중국 탕산 대지진은 한참 전부터 강진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권력 다툼에 눈이 먼 정부는 "민심을 동요시킨다"며 지진 경고를 묵살했다.

그러나 인근 만주족 자치구인 `칭룽`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칭룽의 공무원들은 지진에 대비하여 비상교육을 실시하고 건물 안전을 확인 해 4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칭룽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정권 강화와 중국의 힘만으로도 재난을 잘 극복하고 있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를 위해  탕산 지진을 비공개로 만들어버린 정부 때문에 칭룽 시는 이런 성과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었고, 탕산 시의 외국인 출입을 10년 간 금지시켰다.

또한 지진 복구를 위해 인민군을 10만 명이나 동원했으나 정권 유지를 위해 외국의 지원을 거부해 최신 장비 없이 수작업으로 구조 활동을 하다 보니 실종자 확인 작업에만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05년 9월 12일 중국은 "중국 내에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더 이상 국가기밀이 아니다"라고 선포하면서 거의 30년 만에 탕산 지진에 대한 기밀을 해제했다.

 

*출처: 다음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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