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7월10일] 미국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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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7월10일] 미국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탄생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07.10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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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856년 7월 10일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출신의 미국 발명가이자 물리학자인 니콜라 테슬라가 태어난 날이다.

기계공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이기도 한 그는 상업 전기가 보급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당시 전자기학의 혁명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다.

테슬라의 특허와 이론적 연구는 전기 배전의 다상시스템과 교류 모터를 포함한 현대적 교류 시스템의 기초를 형성했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2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으며, 동시대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과는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자기장의 국제단위인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기업명으로 남아 있다.

▲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제국(현재의 크로아티아)의 스밀랸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인 테슬라는 태어날 때부터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후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테슬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다섯 살 때 만든 작은 수차였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독특한 터빈을 고안할 때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단히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모국어인 세르보크로아트어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까지도 구사할 수 있었다.

특히 수학에는 상당히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순식간에 답을 알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그는 “이런 느낌이 들면 내가 문제를 해결했고, 결국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교류 장치 연구의 시작

1854년 안토니오 메우치가 발명한 전화가 유럽에 널리 퍼지면서 토머스 에디슨의 유럽 지사에 의해 부다페스트에 전화 교환소가 문을 열었다.

테슬라는 그 해 1월 마침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으며 삼촌의 도움으로 헝가리 정부의 중앙 전신국에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과거 종합기술학교를 다닐 때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교류 전기 장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테슬라는 당시 직류 모터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교류 전기 장치로써 해결하고자 했고, 회전 자장의 원리를 이용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는 끝없이 시스템을 보완해 가면서 교류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하고, 이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장치들을 설계했다.

테슬라가 개발한 다상 시스템을 이용하면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하고, 분배하고, 또 기계적인 동력으로 이용하는 것, 모두 것이 가능했다.

미국으로의 이주와 에디슨과의 만남

1882년 테슬라는 가족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푸스카스 형제의 주선으로 에디슨 전화회사의 파리 지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많은 실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교류 시스템이 현재의 직류 시스템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해냈으며, 이러한 교류의 잠재적 가치를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파리 지사의 책임자이자 에디슨의 동료였던 찰스 베처러는 테슬라의 능력을 알아보고는 미국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1884년 테슬라는 그의 추천서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미국에서 에디슨은 직류 전기 장치로 인한 문제로 많은 고장 문의가 들어와 누전, 화재 등의 일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테슬라는 직류 전기 장치 수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에디슨이 만든 원시적인 발전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 두 발명가와 전류 전쟁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이 프로젝트의 대가로 보너스 5만 달러를 약속했었으나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악연은 이때부터 이어진다.

본인의 이름을 건 회사에서 일하게 된 테슬라는 이미 머릿속에 구상해 둔 아이디어로 손쉽게 많은 특허를 따낼 수 있었다.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을 바탕으로 수많은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의 발명품으로 눈을 돌렸으며, 웨이팅하우스는 그의 교류 시스템을 대신 채용했다.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곧바로 교류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자료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애완동물을 잔인하게 죽인 장면이 담긴 전단지들을 배포하는 흑색선전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대세는 점점 직류에서 교류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에디슨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고 한다.

결국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을 연장하여 자신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고, 웨스팅하우스는 사업 영역을 확장시켜 끝내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이용한 발전소를 세웠다.

그는 교류 시스템 외에도 라디오를 통한 무선통신, 유체다이오드, 헬리콥터, 레이다 등 많은 기술의 개념과 구상과 개발에 공헌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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