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7월9일] '러셀-아인슈타인 선언'..."핵무기 없어지는 그날까지"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7월9일] '러셀-아인슈타인 선언'..."핵무기 없어지는 그날까지"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0.07.09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미국과 소련간 수소폭탄 경쟁이 심화되던 1954년 남태평양 비키니 군도에서 미국이 실시한 핵 실험에 많은 과학자는 인류멸망에 대한 위기감을 절감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1955년 7월 9일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미국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영국 런던에서 핵무기 폐기와 과학 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호소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 선언문 결의

버트런드 러셀

“향후에 세계 대전이 일어날 경우, 핵무기가 틀림없이 사용될 것이고, 그러한 무기가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세계의 모든 정부는 자국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세계 대전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각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들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분쟁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서 평화적 방법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세계의 과학자와 일반 대중이 이 회의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의문에 서명할 것을 제안한다”

선언에는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 막스 보른, 퍼시. W. 브리지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폴드 인펠트, 프레데릭 졸리오퀴리, 허먼 물러, 라이너스 폴링, 세실 F. 파웰, 요제프 로트블라트, 버트런드 러셀, 히데키 유카와 등 11명이 함께 동참했다.

이후 성명한 이들 가운데 레오폴트 인펠트를 제외한 10명은 각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과 '퍼그워시 회의' 창설에 앞장선다.

▲ 퍼그워시 회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921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921년)

1957년 7월 열린 제1회 회의에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10개국의 과학자 22명이 참가해 방사능의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핵실험의 중지를 요청했다.

이후 매년 한두 차례 영국 인도 루마니아 스웨덴 등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회의를 열고 있다. 제1회 개최지의 이름을 따 모두 퍼그워시 회의라고 부른다.

핵무기를 막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를 절멸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국제협력과 국제간 불신이 해소되어 전 세계 과학자는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선언의 취지로는 핵무기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각국 정부에게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권고하는 등 적극적인 반핵평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것으로 과학자들에게 핵폭탄 등과 같은 연구 결과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연구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의 정책 결정자들의 만남을 주선했고, 화학 무기 금지 조약, 핵무기 확산 금지 조약(NPT), 포괄적 핵 실험 금지 조약(CTBT) 등 대량 살상 무기 확산 방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