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7월14일]‘황금빛 화가’...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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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7월14일]‘황금빛 화가’...구스타프 클림트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7.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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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862년 오늘 아르누보 운동의 핵심인물로,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출생한 날이다.

그는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대중, 주류 미술계 그리고 평론가들로부터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지만, 근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로티시즘에 영향을 주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작품

1894년 빈 대학 대강당의 천장화를 위임받아 ‘의학’, ‘철학’, ‘법학’ 3점의 작품을 완성했으나. 작품들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염세적이라는 이유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은 빈 대학 교수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으나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당국은 이 작품이 빈의 문화적 위상을 실추시켰다면서 빈 대학에서 철거할 것을 명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작품 ‘의학’과 ‘법학’은 외설적이며 과도한 성 도착적 표현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제국회의 심의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 세 작품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퇴폐 미술로 규정한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의 임멘도르프 궁전에서 불태워졌다.

1901년 발표한 ‘유디트 1’은 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채 황금색으로 장식한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배경과 문양들에 싸여 있는 유디트를 매우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음마저 관능으로 탈바꿈시켜 그가 왜 ‘퇴폐적 에로티시즘’으로 비판받았었는지 알 수 있다.

포옹을 하는 연인을 묘사한 ‘키스’(1907)는 작품 속 등장인물이 클림트와 그의 연인인 에밀리 플뢰게라고 한다. 키스라는 성적인 암시를 담고 있음에도 화면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묘사로 클림트는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클림트는 이 작품을 통해 황금빛 바탕과 기하학적 패턴이 특징인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장식 미술가에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퇴폐적 혹은 선정적인 작가라는 비난에서도 벗어났다.

그의 황금 스타일은 ‘유디트’에서 시작하여 ‘베토벤 프리즈’, ‘희망 1’, ‘여성의 세 시기’ 등을 거쳐 ‘다나에’와 ‘키스’에서 절정에 달한다.

▲ 빈 분리파(Wien Secession)

1897년 클림트를 중심으로 낡고 판에 박힌 사상을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시도하고, 미술과 삶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적인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그들의 성과는 거의 모든 건축에서 실용성과 상징주의의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주거와 미학을 결합시킨 총체 미술을 창출하고자 했다. 또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하여 근대적인 국제주의 미술과 디자인이란 개념을 주창했다.

클림트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칼 몰, 오토 바그너 등 당대 오스트리아를 대표한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참여했으나, 순수 예술을 지향했던 회원들은 빈 분리파가 더 이상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이에 낙담한 클림트가 1905년 탈퇴하면서 반 분리파는 소멸한다.

 

*출처: 다음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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