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5월29일] '비잔티움 제국'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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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5월29일] '비잔티움 제국' 멸망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05.29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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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 조감 복원 상상도(그래픽 재현)
콘스탄티노폴리스 조감 복원 상상도(그래픽 재현)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453년 5월 29일은 비잔티움 제국, 또는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날이다.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이후 중세까지 이어진 제국으로, 로마 황제가 통치했다.

324년부터 337년까지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제국을 재조직해 콘스탄티노플을 새로운 수도로 삼았고, 크리스트교를 합법화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기에 제국은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서지중해 일대를 회복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7세기 초기 무슬림 정복전쟁으로 이를 대부분 잃게 된다.

4차 십자군 때는 콘스탄티노플이 약탈당하고 함락당하는 등 부침을 겪던 왕국은 1453년 완전히 멸망했다.

▲동로마와 서로마의 분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신행정 제도인 사두체제를 만들었고, 자신과 같은 공동 황제를 두어 아우구스투스라 칭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밀리아누스가 퇴위하자 사두체제는 무너졌고,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1세는 황제 세습 원칙을 내세웠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원후 330년 옛 그리스의 비잔티움을 2번째 로마로 삼아 천도를 단행했다. 이 도시의 이름은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지어졌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동방과 서방 간 교역로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천도와 함께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도입한 행정 개혁을 다시 개선한다.

강력한 개혁정책 덕에 제국은 상당한 군사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기독교는 더 이상 국가에 박해받지 않았으며 황제가 관대한 특전을 베풀면서 황실의 비호를 받았다.

황제 세습 원칙이 지켜지면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죽자 황위는 그의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가 각각 동부와 서부를 맡았다.

▲동로마 제국의 번성

테오도시우스 사후 동부 제국의 영토는 다키아, 마케도니아, 아시아, 폰투스, 오리엔트, 트라키아, 이집트까지 이어졌다.

3~4세기에 동로마 제국은 사회, 문화가 서로마 제국보다 발달했고 재정 자원도 풍부해 공물을 지불함으로써 국가의 침략자를 회유할 수 있었다.

동로마에서는 용병을 고용할 여력이 있어서 대개 서로마 제국이 직면한 곤란한 상황을 도왔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을 요새화해 1204년까지 지켜낸다.

훈족 아틸라의 침입을 피하고자 테오도시우스는 이들에게 공물을 바쳤고 훈족이나 타 이민족과 교역을 장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사는 상인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453년 아틸라가 죽자 훈족은 몰락했고 동로마 제국은 남은 훈족 무리와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나갔으며, 이 사람들은 로마 제국 군대의 용병으로서 싸우게 된다.

▲서로마의 붕괴와 그 이후

아틸라가 죽자 동로마 제국은 평화기를 누렸으나 서로마 제국에서는 476년에 게르만족 출신의 로마 장군 오도아케르가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켰다.

그러나 율리우스 네포스 등은 달마티아와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로마의 황제를 자임했다. 480년 율리우스 네포스마저 사망함으로써 서로마 제국은 최종 붕괴된다.

교황 레오 3세는 로마 제국의 황위가 공위 상태라고 간주, 서기 800년 샤를마뉴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삼았다.

이 때문에 서로마의 여황인 아테네의 에이레네의 존재가 부정되는 등 기존 로마 제국의 권위는 도전받았다.

이탈리아를 회복하고자 모이시아에 정착해 있던 테오도리크의 동고트족과 협상한 동로마의 제노 황제는 고트 왕을 이탈리아로 보내 '이탈리아 군부 총감'으로 삼기도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잔티움

1203년 비잔티움의 수도를 점령한 십자군은 사흘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수도가 무너지자 로마 제국의 후계국인 니카이아 제국과 에페이로스 공국이 들어섰으며, 트라페주스의 알렉시오스 1세의 약탈 몇 주 전에는 트라페주스 제국이 성립했다.

1242년~1243년의 몽골의 침입으로 룸 술탄국이 약해지자 아나톨리아에는 토후들과 가지들이 각자 공국을 이루며 할거해 이 지방에서 로마 제국의 세력도 약화했다.

오스만 제국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1354년 겔리볼루 지진 이후이다. 제국이 내전을 끝낼 무렵 오스만은 이미 세르비아를 무찔렀고, 코소보 전투 이후 발칸 지방 상당수를 정복했다.

1453년 4월 2일, 술탄 마흐메트 2세의 군대 8만여 명과 대규모 비정규군이 도시를 포위했다. 열세였던 기독교도 군대가 필사로 해자를 방어했으나 2개월 후 수도는 함락됐다.

마흐메트 2세는 1460년 미스트라를, 1461년에 트라페주스 제국을 정복하면서 그리스인 세력을 모두 멸망시켰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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