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6월2일]‘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주세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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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6월2일]‘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주세죽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6.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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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901년 오늘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 동우회 집행위원과 경성 여자 청년동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 주세죽이 출생한 날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북한 정권 부수상과 외상 등을 지낸 박헌영의 전처이다.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으나 일제강점기하 사회주의 계열 활동가들에 대한 건국훈장 수여에 대해서 보수우익 계열의 비판이 있었다.

1928년 남편 박헌영, 딸 비비안나와 함께
1928년 남편 박헌영, 딸 비비안나와 함께

 

▲활동

함경남도 함흥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경성부에서 유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

1921년 피아노 공부를 위해 상하이에서 1년간 유학을 하던 중 박헌영과 김단야를 만났다 

1925년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박헌영과 결혼 후 조선공산당 사건과 6ㆍ10 만세 운동 참가로 일본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다.

1927년 여성운동단체 근우회에 참가하여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고, 1928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남편 박헌영과 함께 만삭의 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던 중 딸 비비안나를 낳았다.

1929년 주세죽ㆍ박헌영 부부는 ‘국제 레닌 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한 후 코민테른으로부터 ‘조선의 공산당을 지도하라’는 지시를 받고 상해로 건너가 ‘코뮤니티’라는 기관지를 제작하여 국내에 밀반입한다.

그러다 박헌영이 일본제국 경찰에 체포되어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인 김단야와 재혼한다.

1953년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딸 비비안나가 있는 모스크바로 가던 중 기차에서 병이 악화되어 모스크바에 도착 후 사망한다.

▲조선 여성 동우회

1924년 5월 4일 서울 제동 조선여자 강습원에서 허정숙, 주세죽, 박원희, 정칠성, 황신덕 등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의 주도로 조직된 단체로 종래의 계몽적 여성 교육론을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여성 해방론을 주장했다. 

같은 해 열린 창립총회에서 신사회의 건설과 여성해방운동을 함께 할 여성을 양성한다는 강령을 채택했으며,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부인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뒤 1927년 여성 단일 단체인 근우회가 조직되자, 이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전개하여 나갔다. 

*출처: 다음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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