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5월12일]‘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5월12일]‘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5.12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1731년 오늘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과 우주 무한론을 주장한 홍대용이 출생한 날이다.

그는 의심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적인 사고의 선구자였다. 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 점은 다른 실학자와 같지만, 당시 이질적이었던 과학 사상을 배우고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은 다른 실학자와 구별된다.

혼천의, 홍대용
혼천의, 홍대용

홍대용은 여러 분야를 융합하여 기존의 고정관념과 인식을 뛰어넘어 하늘을 열어 법칙을 발견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세상을 구제하려고 한 18세기 최고의 지식인이자 과학자이다.

▲학문과 사상

1765년(조선 영조 41년) 35세 때 숙부인 홍억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으로 수행하여 3개월여를 북경에 머물면서 엄성, 반정균, 육비 등을 만나 담론 하며, 경의(經義), 성리(性理), 역사, 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또한 천문학ㆍ지리학ㆍ역사 등에 관한 지식과 서양 문물을 배우고 귀국했다.

중국 여행 후 집필한 ‘을병연행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3대 중국 견문록으로 꼽힌다.

홍대용의 학문과 사상의 주 관심사는 유교적인 원리론보다는 군국과 경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실학적인 학문 경향은 18세기 중엽 민중의 생활안정과 번영을 추상적인 도덕론보다 상공업의 발달과 기술혁신을 통해 이룩하자는 북학파의 효시를 이루었다.

나이 29세에 홍대용은 호남의 학자 나경적을 만난 후 천문학에 관심을 가져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를 제작하고 자명종, 혼상의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혼천의는 물을 사용해 움직이던 이전 혼천의와는 달리 기계시계를 톱니바퀴로 연결해 움직이게 했으며, 혼상의는 별의 위치와 별자리, 황도와 적도 등 천구의 표준 대원을 표면에 나타낸 일종의 천구의다.

홍대용은 더 나아가 사비를 털어 사설 관측소인 ‘농수각’(籠水閣)을 짓고 천체 관측 기구인 측관의, 구고의 등을 제작해 설치하여, 천체 관측에 열정을 쏟았다.

1783년 나이 53세에 홍대용은 중풍으로 상반신이 마비돼 죽음에 이른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2005년 국제 천문 연맹 산하 소행성센터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돌고 있는 새로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을 ‘홍대용’으로 명명했으며, 천안시는 2014년 5월 ‘천안 홍대용과학관’을 개관했다.

▲저서‘의산문답’

그의 대표 저서인 ‘의산문답’에서 그가 품었던 과학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장했으며, 우주의 별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끝없이 흩어져 있으므로 지구가 중심이 아니다 라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월식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점과 높은 곳에 올라가도 먼 곳을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지구의 모양은 둥글다는 ‘지구 구형설’을 주장했다.

이 책은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허자는 유교 사상을 대변하고, 실옹은 근대 서양 과학을 대변하여, 실옹을 통해 맹목적인 유교를 비판하고 합리적인 과학 사상을 전달하려 했다.

이 책에는 중력에 대한 고찰도 있다. 홍대용은 그 이유로 “기운이 땅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으로 봤으며 “땅에서 멀어질수록 이 힘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라고 했다. 그는 또 우주는 한없이 넓고 지구는 그중 하나의 천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넓은 우주 속에 다른 생명체, 즉 외계인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출처: 다음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