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3월17일]제3공화국 최대의 스캔들 ‘정인숙 피살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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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3월17일]제3공화국 최대의 스캔들 ‘정인숙 피살사건‘ 발생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3.17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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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유신독재 시절 정관계의 접대스켄들로 떠들석하게 흔들었던 정인숙 피살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1970년 오늘 밤 11시경 교통사고를 가장한 총격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망한 여성은 당시 서울 시내 고급 요정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26세의 정인숙.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그녀의 수첩에는 재계 인사는 물론이고 정계 고위층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 제3공화국 고위층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위정자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 사건이 되었다.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오빠인 정종욱이 사생활이 문란했던 여동생 정인숙에 분노한 끝에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발표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인숙은 고위 공무원의 딸로 영어에 능통했다.

대학 입학 후 학업에 흥미를 잃고 중퇴한 후 모델일을 하다 고급 요정의 접대부로 나가게 된다.

이후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겨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선운각의 최고 접대부가 된다.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접대부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은 정인숙은 권력의 노리개가 되어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는데 그중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은 유독 정인숙을 좋아해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많은 소문들이 유포되었다.

정인숙
정인숙

정인숙이 미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사용한 회수여권(지금의 복수여권)을 국무총리실 비서관이 주선했고, 그 신원 조회는 중앙 정보부장 비서실장이 직접 담당할 정도로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녀의 아들 정성일은 성인이 된 후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냈으나 정일권의 사망으로 소송은 무효화되었다.

정인숙의 피살사건으로  과거 국가에서 관리했다는 ‘기생관광’이 조명을 받았다.

당시 서울에는 약 100개의 요정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정치인들이 모여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요정정치 즉, 밀실정치의 문화가 생겨났다.

국가에서 ‘요정과’를 운영하며 기생에게 교육을 받으면 이수증과 관광종사원 등록증을 주어, “매춘은 애국이고 관광 기생은 수출역군“이라는 황당한 개념으로 한국의 여성들을 외화벌이의 도구로 이용했다.

1970년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65만 명이었고, 그중 70~80%가 일본인 남성으로, 기생관광을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약 8,000명의 여성이 일본인을 접대하는 일에 종사한 것으로 추산되며, 기생관광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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