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3월 11일] 무소유 사상 ‘법정스님’ 열반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3월 11일] 무소유 사상 ‘법정스님’ 열반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03.11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법정' (본명 박재철 1932년 11월 5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 불교 승려,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자 수십 권의 저서를 통해 '무소유 사상'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했다.

지병 폐암으로 인해 78세에 타계했으며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자에 지낸다.

법정스님 영정
법정스님 영정

▲무소유사상

그는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 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에는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였다. 1972년에는 첫 에세이집 ‘영혼의 모음을 출간했다.

1973년 함석헌 선생이 주도했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75년 발생한 인민혁명당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그 해 10월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당시 부도만 남아있던 송광사 자정암 터에 토굴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자기 질서 속에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고 텅 빈 충만의 시기를 보냈으며, 이 무렵인 1976년에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무소유’를 발간했다. 이 책은 370만 권이 판매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이후 17년간 불일암에서 생활한 그는 이곳에서의 수많은 저서 집필로 명성이 알려지게 됐다. 이로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자 1992년 4월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한다.

1993년 7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독립기념관과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이 모두 뽑혀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속 일에 관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날로 각박해져만 가고 메말라만 가는 우리 심성을, 세상과 자연을 두루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살아가자"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하게 된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선포 기념행사로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하는 실천 큰 모임, 출발 맑고 향기롭게' 대중 법문을 개최했다. 맑고 향기롭게 모임은 범종교, 범종파 순수 시민운동으로 회원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후원하는데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졌으며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마련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학비를 지원하는 등의 운동을 펼쳤다.

이후 회원과 후원금의 규모가 증가하자 1996년 12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법정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1997년 12월 14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

서울 길상사 법정 선사 추모당
서울 길상사 법정 선사 추모당

▲ 말년과 입적

2003년 12월, 월간 ‘맑고 향기롭게’에 ‘내 그림자에게’라는 글을 통하여 길상사 회주(會主)와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직책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뒤에서 도울 것이라 약속하며 길상사에서 짝수 달마다 해오던 법회를 봄, 가을 두 차례만 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주위의 거듭된 만류로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직 사임은 철회하였다.

2007년 폐암이 발병해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2009년 겨울에는 강원도의 오두막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요양했지만, 병세가 악화돼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시 51분에 입적하였다.

법정 스님의 장례는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며 관이나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승복 입은 그대로 다비하라는 평소 뜻에 따라, 영결식 등 별도의 장례절차 없이 진행되었다. 3월 12일에는 스님이 수행했던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운구해 13일 오전 11시에 다비하였다.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그 후 그가 쓴 책들의 수요가 늘어 일부 책들은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을 만큼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법정의 저서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말까지만 그의 저서를 판매하기로 결정 일정 기간 그의 저서를 판매토록 한 후에는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했다. 2018년 이후로는 일부 서적과 미발표 원고 등이 일부 판매되고 있다.

법정스님 추모10주기 집회
법정스님 추모10주기 집회

▲ 법정스님 10주기 추모

'무소유'의 철학을 설파했던 법정스님 10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찰 길상사에서 추모 법회가 봉행됐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한평생 실천하고 가르친 수행승이었다. 그는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며 생명 중심의 나눔의 삶을 강조했다.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