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2월28일] 2.28 대구학생의거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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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2월28일] 2.28 대구학생의거 발생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02.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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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중인 학생들 사진출처=2·28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위중인 학생들 <사진출처=2·28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960년 2월 28일은 이승만 정권 시절 대구에서 학생의거가 일어난 날이다.

이날은 일요일이었으나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나가지 못하도록 당국이 등교 지시를 내린 것에 대한 반발이 의거로 이어졌다.

3.15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일어난 이 의거는 이후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대한 항거로 번졌다.

▲사건의 개요

2.28 의거의 발단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일이 계기가 됐다.

자유당 정권은 학생들의 유세 참석을 방해하고자 대구 경북고등학교는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이유로 일요일인 28일에 등교할 것을 지시했다. 다른 국공립 고등학교 7개 역시 같았는데, 사유 중에는 토끼 사냥이나 영화 관람과 같은 황당한 이유도 있었다.

이에 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 집에서 경북, 대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이 등교지시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28일 오후 학생 800여 명의 학생들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했고, 유세장으로 가던 장면 박사를 만났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날 1200여명의 학생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가 번질 것을 우려해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을 석방했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 과정

의거가 일어난 당시는 발췌 개헌(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 진보당 사건(1958년) 등 자유당 정권의 실정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대통령 선거(3월 15일)가 다가온 시기였다.

이윽고 대선 당일인 3월 15일 마산 의거가 일어났고 참가했던 마산상고 신입생 김주열이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그의 왼쪽 눈에는 경찰이 쏜 최루탄이 파편으로 박힌 상태였다. 이 사건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됐다.

전국 대규모 시민에게 확대된 반독재투쟁인 4.19 혁명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결국 하야를 발표하고 자유당 정권은 막을 내렸다.

▲2.28이 오늘날 갖는 의미

우리 역사에서 2.28은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이은 의거로 전후 학생 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특히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2.28의거의 의미가 있다. 한일 수교 반대와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에 미친 영향력도 적지 않다.

1961년 4월 10일 매일신문의 주관으로 대구시민 성금으로 명덕로터리에 2.28대구학생기념탑을 세웠고 1990년 2.28기념탑은 두류공원으로 이전됐다.

오늘날 경북고등학교에는 2.28기념탑과 작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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