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2월21일]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선언’ 출간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2월21일]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선언’ 출간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0.02.21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848년 2월 21일은 공산주의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출간한 날이다.

공산당선언은 공산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강령적 문헌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공산당 선언 탄생과 그 방향

19세기 중엽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영향력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프롤레타리아는 독일어로 사회적 하위 계급의 일원으로 무산자라고도 불리며 부를 소유하 못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노동자를 일컫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사명과 해방의 앞길을 밝혀 주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적 지침을 확립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1847년 초안을 작성했다.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입해 있던 의인동맹은 공산당선언을 동맹의 정책문서로 채택했다. 그 해 여름, 조직은 재정비를 거쳐 1848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산당선언은 생산 방식이 사회 제도의 성격을 규정하며 정치와 사회적 사상의식의 기초로 된다는 유물사관의 원리가 천명돼 있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의 기본 모순, 자본주의 멸망의 불가피성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승리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르크스는 불가피성과 필연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변혁을 꾀할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모순을 가지고 나락으로 향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이후의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

선언 발표 직후 유럽에서는 몇 차례의 민중 봉기가 발생한다. 이 때의 봉기가 선언과 직접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당대의 혁명적 시대정신을 가장 선명하고 급진적으로 드러낸 문건임을 확인시켰다.

1871년의 파리 코뮌은 “노예제도에서 해방 하려는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권력을 수립한 세계 최초로 벌어진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의 예행연습"으로 일컬어졌다.

1881년,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한 독일 사회민주당은 국회의원 12명을 당선시켰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프롤레타리아가 이룩한 가장 눈부신 업적"이라고 했다.

또한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이 "전체 사회주의 문헌 가운데 가장 널리 유포되고 가장 국제적인 작품이며 시베리아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모든 나라의 수천만 노동자들에게 인정받는 공동 강령"이라 평했다.

마르크스는 1882년 공산당선언 러시아 개정판에서 러시아에서의 혁명가능성을 언급했고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다.

이후로도 공산당선언은 동유럽과 남미 등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