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2월 12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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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2월 12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02.1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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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월남전참전회 가해자가 누구인지.. ‘증거가 명확히 나온 바 없다‘ 주장
국정원은 "외교적 불이익"을 근거.. 정보 공개 거부, 비공개 처분 위법 세 번째 법원 판단

[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퐁니·퐁넛 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퐁넛 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 부대에 의해 70여 명(69~79명 추정)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이 마을은 미군의 전략에 따라 안전 마을로 분류된 곳이었으며 미국 해병대 켑 소대와 자매결연을 한 곳이었다. 마을에는 남베트남군의 가족들도 살고 있었다.

퐁니, 퐁넛 여성과 아이들의 주검사진
퐁니, 퐁넛 여성과 아이들의 주검사진

이 사건은 2000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이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었다.

2004년 6월, 대한민국의 시민단체는 성금을 모아 관련 희생자에 대한 추모비를 세웠다.

또한, ‘한겨레21’은 미군의 자체 조사 보고서를 공개해 다시 한 번 사건의 전모를 세상에 알렸다.

▲ 배경

베트남 전쟁은 정규군끼리의 전투 이외에도 베트콩으로 알려진 비정규군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게릴라 활동이 거세었던 전쟁이었다. 

북베트남은 비정규군에 의한 게릴라전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모든 베트남인이 참전하는 “인민 전쟁”이라고 불렀다.

한편, 미군을 비롯한 한국군 등 남베트남의 동맹군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일정 구역에 민간인을 몰아놓고 전략촌을 만들어, 그 이외의 지역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는 “자유 사격 지대”보아 수색 섬멸 작전을 펼쳤다.

미군은 “눈에 띄는 것은 모두 베트콩”이고 “어린 아이도 첩자”이며, “놓치는 것보다 오인해서 죽이는 게 낫다”는 태도를 보였다.

아이의 주검사진
아이의 주검사진

▲ 학살사건 발생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 여단은 1968년 1월30일부터 2월29일까지 여단 규모로 ‘괴룡 1호작전’을 벌였다.

이 작전은 1968년 1월30일 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구정 대공세에 맞선 것으로 ‘구정공세 반격작전’으로도 불렸던 학살 사건이 발생되었다.

▲ 사건 진실

당시 학살 피해자의 증언과 전투 참여자의 증언, 미군 측의 조사 보고서에 의해 드러난 사실이 다르다.

한국군 철수 이후 민간인 부상자 치료를 위해 미군이 들어가 마을을 촬영한 모습
한국군 철수 이후 민간인 부상자 치료를 위해 미군이 들어가 마을을 촬영한 모습

한국군 공식 기록인 ‘파월 한국전사’의 내용을 보면 “1968년 2월 12일 오전 11시 정도 제1중대장, 김석현 대위는 08:15에 1번 도로를 정찰하며 북진하고 퐁넛 마을에 진입 했다.

이후 11:05에 목표 퐁니촌을 공격하였는데 이 때 서쪽 지역으로부터 30여발의 적 사격을 받아 4.2인치 박격포로 발사지점을 포격 제압했으며 부상자 1명이 생겨 후송하였다.”라고 기록되었다.

살아남은 마을 주민은 아침밥을 먹고 난 후쯤의 시간에 한국군이 당산나무 쪽으로 밀고 들어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고 증언한다.

당시 작전에 참여 하였던 1중대의 1소대장 최영언 씨는 “갑자기 마을로부터 선두 1소대 병력 쪽을 향해 사격이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모든 소대원들이 수풀 바닥에 엎드렸다. 누군가 한명이 총에 맞아 부상당한 듯했다. 중대장 김석현 대위에게 긴급히 무전을 쳤다. 중대장의 응답은 마을을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1소대와 2소대가 방향을 왼쪽으로 틀고 총을 쏘며 마을에 진입했다”고 말하였고,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베트콩은 떠나고 겁먹은 마을 사람들뿐이어서 마을 사람을 한 곳에 모아 놓았는데, 부대 후미의 누군가가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 증언하였다. 2소대장이었던 이상우 역시 “베트콩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다. 마을 주민들도 저항하거나 그런 움직임도 없었다. 애들이 겁이 나서 도망가니까 죽인 거지 참 …….” 이라고 말하였다.

안전 마을이었던 퐁니·퐁넛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자, 남베트남 정부는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미군은 독자적인 조사를 벌였다.

주월 미군 사령부 감찰부는 조사결과를 주월 미군 사령관 및 군부 고위 장성에게 보고했으며 내용에는 한국군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사람들을 학살하였다는 것을 명시되었다.

이 보고서는 기밀문서로 분류되어 비공개로 있다가 30년이 지난 후, 2000년 6월1일 비밀이 해제되었다. 미군 감찰부의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은 미 해병 연합 행동소대 Delta-2 소속 본(J. Vaughn) 상병이 촬영한 것이다. 본(J. Vaughn) 상병은 한국군 철수 이후 민간인 부상자 치료를 위해 마을로 들어갔다.

▲ 사건 이후

퐁니·퐁넛 마을의 생존자들은 1969년 2월 자신들이 남베트남 정부에 복무하고 있는 군인의 가족이고 합당한 시민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학살을 당하였다며 진실을 밝히고 배상하여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남베트남 하원 의장에게 보내 탄원하였다.

남베트남 정부 역시 미군 사령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한편, 미군 정치 고문 제임스 맥은 보고서에서 퐁니·퐁넛과 같은 민간인 학살이 무수히 일어나 “한국군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증오심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진단하였다.

미국은 한국군이 공산주의자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어 매우 용감하지만,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를 일삼고 점령군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까지 알고 있었지만 결국 사건을 은폐하였다. 당시 한국의 언론은 이 사건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 학살 증거

당시 16세이던 쩐티득의 부상당한 팔을 치료하고 있다
당시 16세이던 쩐티득의 부상당한 팔을 치료하고 있다

증거 사진을 찍은 본(J. Vaughn) 상병은 조사관인 캠퍼넬리 소령에게 사진과 함께 진술서를 제출하였고, 얼마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1994년 46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한편, 본 상병이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 나온 16세의 쩐티득은 4년뒤인 1972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가담하였다.

빈디엔 근처의 남베트남군 초소에 부비트랩을 설시하다 발각되어 감옥에 갔으며 1975년 4월 전쟁 후에 풀려났다.

쩐티득은 이후 다낭에서 잡화상을 하다 1999년 8월 유방암에 걸려 47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진실 여부 '부정'

가슴이 도려진 응우옌 티 탄(당시 21세)은 하루동안 더 살아있다가 사망
가슴이 도려진 응우옌 티 탄(당시 21세)은 하루동안 더 살아있다가 사망

2000년 11월 ‘한겨레21’은 종전 26년을 맞아 기밀 해제된 문서 속의 희생자를 찾아 나섰다.

사진 속가슴이 도려내진 여성은 당시 21살이었던 응우옌 티탄이었다. 여동생 응우옌 티 호아는 언니가 하루 동안 더 살아 있었고 조용히 엄마를 부르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당시를 회상하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사건의 진실을 인정하였는지 궁금해 하였다.

2013년 8월 글로벌포스트와 인터뷰한 대한민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군이 그러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학살 일체를 부정하였다.

▲ 조사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많은 대량 학살을 벌였는데, 퐁니・퐁넛 학살 이외에도 하미 마을 학살 사건, 빈호아 학살 등이 알려져 있다.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은 베트남 정치국의 공식 문서에서 약 5천여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8년 4월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한·베 평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하였다.

이 법정은 퐁니-퐁넛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과 ‘하미 마을 학살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 티탄(동명이인)이 원고로 나서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며, 시민평화법정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을 판결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진상조사를 권고하였다.

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하는 퐁니·퐁넛 마을 학살 생존자(당시 8세) '응우옌 티 탄'
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하는 퐁니·퐁넛 마을 학살 생존자(당시 8세) '응우옌 티 탄'

▲ 정보공개 소송과 반성

민변은 1968년 당시 퐁니・퐁넛 마을 사건을 조사하였던 중앙정보부의 자료 공개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정원은 "외교적 불이익"을 근거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다가 법원의 공개 명령을 받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다시 정보 공개를 거부하였다.

지난 2020년 1월 3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민변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TF(민변 티에프)가 국정원장을 상대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단했다.

재판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퐁니·퐁넛 학살에 가담한 한국군 최영언 중위 등 3명을 조사한 뒤 작성한 문건 목록 중 이들의 생년월일 일부를 제외하고 비공개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정원의 비공개 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세 번째 법원 판단이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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