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2월 5일] 부민관 폭파주역 '독립운동가 조문기' 하늘로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2월 5일] 부민관 폭파주역 '독립운동가 조문기' 하늘로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02.05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파당시 “일본은 망한다. 젊은이들이여, 징병(徵兵)을 거부하자!”를 외쳐.

 [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조문기(1926년 5월 19일 ~ 2008년 2월 5일)는 독립운동가로 한국의 마지막 무장 의열독립운동인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동자 중 한사람이다.

부민관 사건의 주역들
부민관 사건의 주역들

 ‘부민관 폭파사건‘은 조문기, 강윤국, 유만수가 주도한 사건으로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망 약 3주 전인 1945년 7월24일 경성부 부민관에서 일제 정치인, 친일반민족자 박춘금이 주최해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에서 사제 시한폭탄 두 발을 설치 폭발시킨 사건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으로 1942년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 일본 천기공장에서 3년간 가혹한 노동으로 시달리던 중 공장이 폭격을 당하자 귀국했다.

 1945년 5월 유만수의 주도로 경기도 안성 유씨의 집에서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 조직하고, 광복 후에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인민청년군 사건으로 복역했다.

 이 사건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기념표석을 세웠다.

 1959년에는 이승만 암살 음모 사건에 연루되는 등 대한민국 역대 정권과의 불화로 독립유공자 서훈이 늦어졌다.

또한, 당시 부민관 사건이 일제의 보도통제로 잘 알려지지 않아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재조명되었다. 이에 1990년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 받았다.

 이후 그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 중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친일파 청산 문제’에 온 힘을 다했으며,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일제 강점기의 만행과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적인 진실을 찾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장례식은 1994년에는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 이어 2008년도에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하는 겨레장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으며,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저서 ‘슬픈 조국의 노래’가 있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