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월 23일] 표현주의 선구자, '절규'의 화가 ‘뭉크’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1월 23일] 표현주의 선구자, '절규'의 화가 ‘뭉크’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0.01.23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노르웨이의 국민적인 화가로 20세기 표현주의 선구자와 판화 작가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1863년 12월12일~1944년 1월23일)가 사망한 날이다.

그는 생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인간 근원에 존재하는 ▲고독 ▲질투 ▲불안 등을 응시하는 인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화풍’의 대표적 화가이다.

대표적 작품으로 ‘절규’, ‘병든 소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화상’, ‘사춘기’ 등이 있다.

▲ 유년 시절

에르바르_뭉크 (1921년)
에르바르 뭉크 (1921년)

뭉크는 노르웨이의 정치와 문화에 이바지한 명문가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10년 뒤 누나도 같은 병으로 사망했고 누이동생은 정신병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은 그가 어린 시절 사망했다.

유년시절에 죽음의 공포와 각종 질병에 따르는 불안감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아 그의 작품세계에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게 됐다.

그는 오슬로 크리스티아니아에 있는 미술·공예 학교에서 노르웨이의 중요한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1852~1925)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크로그는 뭉크에게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소개했고 1885년에 파리를 처음 여행 후 ‘저녁 시간(The Evening Hour)’ 작품에서 인상주의 양식을 보여줬다.

▲ 전기 작품세계

죽음의 방(1885-1866년 뭉크의 작품
죽음의 방(1885-1866년 뭉크 작품)

그는 1890년경 아르누보 디자인, 폴 고갱,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같은 프랑스 화가의 후기 인상주의 작품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인상파 양식인 ‘봄날의 카를 요한 거리(1891년, 라스무스 마이어스 컬렉션 소장)’와 ▲표현주의 양식인 ‘저녁 때의 카를 요한 거리(1892년, 라스무스 마이어스 컬렉션 소장)의 대조와 표현 양식의 변화를 보여줬다.

그는 스칸디나비아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등과 교류했다.

헨리크 입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특별한 친밀감을 느껴 입센의 ‘왕위를 노리는 자들’에 삽화를 그리고 ‘유령’을 공연할 때는 무대장치 등을 설계도 했다.

그는 1892년에 베를린 예술가 협회의 초청을 받고 독일에서 그림을 전시하게 된다.

독일 언론에서는 뭉크의 작품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였고 이 논쟁은 예술표현의 자유에 대한 투쟁으로 발전했다.

1890년대에 독일에서 되살아난 그래픽 아트의 영향을 받은 몽크는 1894년에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판화는 특히 단순하고 솔직한 형상으로 유명해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이 강한 주관성을 드러냈다.

▲ 후기 작품세계

뭉크의 대표작 '절규'
뭉크의 대표작 '절규'

베를린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을 때부터 1908년 신경쇠약에 걸릴 때까지의 16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뭉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절규’는 현대인의 정신적 고뇌를 상징한다.

1910년부터 뭉크는 노르웨이에 정착해 악의에 가득한 세계와 자신의 정열에 희생당하는 개인을 묘사했다.

초기작품은 자기 소모적이고 내성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후기 작품에는 삶의 기쁨과 자연의 풍요로움, 인간과 자연의 친화가 그것을 대신한다..

뭉크에게는 자연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 항상 중요했고 이러한 접촉은 자유롭고 대담하며 힘찬 화풍으로 그린 수많은 풍경화에 표현되어 있다.

말년에 그는 판화 제작을 그만두고 오슬로 근처에 있는 집에서 홀로 지내며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뭉크는 부동산뿐 아니라 그림과 판화, 소묘 작품도 모두 오슬로 시에 기증했고 시는 1963년에 뭉크 미술관을 설립했다.

▲ 평가

한 작가는 그를 “노르웨이 최초의 인상파 화가이자 유일한 인상파 화가”라고 묘사했고 그는 26세에 쓴 글에서 “나는 숨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릴 것이다”며 “사람들은 이 작업의 신성함을 이해할 것이고 교회에 있을 때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고 초기 현대 미술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