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1월22일] 김영삼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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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1월22일] 김영삼 대통령 서거
  • 김상옥 기자
  • 승인 2019.11.2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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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2015년 11월 22일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이 서거한 날이다. 만 2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그는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 정치에 입문하기 까지

김영삼은 1927년 12월 20일에 경남 거제도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48년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재학 중 당시 외무부 장관 장택상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를 계기로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민주화 운동 앞장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한 그는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창당에 참여한다.

1963년 박정희의 군정연장 반대 데모로 옥고를 치뤘던 그는 이후 초산테러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반유신투쟁 전면에 나섰다.

1979년 당시 정치환경은 급변한다. 그는 국회의원에서 제명되고 이를 계기로 발생한 부산 마산지역의 부마항쟁이 결국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이어져 유신정권이 붕괴됐다.

이때 그는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 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좌절되고 가택연금을 당하게 됐다.

그러나 계속된 탄압속에서도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그는 시민들과 함께 1987년6월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내게 된다.

▲ 청와대 입성

1993년 대통령 취임한 그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군의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다.

12·12사태, 518광주민주화운동, 군사쿠데타 등의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심판받게 했다.

선진국을 상징하는 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3당 통합으로 지역갈등 심화와 불법 대선자금, IMF 구제금융사태 등이 집권기간 가장 안타까운 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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