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한국의 여행 - 경상북도 회룡포, 장안사, 주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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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한국의 여행 - 경상북도 회룡포, 장안사, 주암정
  • 최애영 사진객원기자
  • 승인 2019.11.21 10: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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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의 일출.안개가 쫙~~깔려 주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회룡포에 둥그런 햇님을 올려 놓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회룡포의 일출.안개가 쫙~~깔려 주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회룡포에 둥그런 햇님을 올려 놓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경상북도 회룡포(回龍浦)는 국가명승 제16호로 낙동강(落東江)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용(龍)이 비상(飛翔)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을 다시 350도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코스가 있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의 천년 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룡산(飛龍山)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洛東江), 내성천(乃城川),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三江)이 보이는데, 깍아 지른 듯한 이곳에서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일명 용주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토석혼축으로 된 성(城)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烽燧臺)가 남아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馬韓)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한 후 백제(百濟)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원산성이 위치한 용궁일대는 근초고왕 25년(370)에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512년 고구려 문자왕이 점령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 후 진흥왕 26년(565)에 신라 땅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원산성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말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지명에서도 나타나듯 전사한 병사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편 언덕에 엉키어 붙었다 하여 ‘피묻끝’이라 부르고 통곡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하여 강 건너 마을을 달읍(達泣)이라 부르고 있다.

인근 용궁향교, 하마비, 황근목, 무이서당, 삼강주막, 산택지, 청원정 등이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곳 회룡포마을에는 야영(野營)과 민박(民泊)이 가능하다.

회룡포 전망대 정자.
회룡포 전망대 정자.
223개의 계단을 오르면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쓰면 350일 뒤에 배달 된다고 한다.
223개의 계단을 오르면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쓰면 350일 뒤에 배달 된다고 한다.
천년고찰 장안사(長安寺)는 신라 경덕왕때 서기 759년 운명조사께서 창건하였으며, 용왕각과 용바위는 신령스런 영험 기도 도량이다.용이 휘감아 도는 물 이름은 회룡포(回龍浦)요,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은 비룡산(飛龍山)이며, 승천하는 구름에 노니는 용의 형상은 용바위가 있으니, 가히 용궁(龍宮)이라 할만하다.
천년고찰 장안사(長安寺)는 신라 경덕왕때 서기 759년 운명조사께서 창건하였으며, 용왕각과 용바위는 신령스런 영험 기도 도량이다.용이 휘감아 도는 물 이름은 회룡포(回龍浦)요,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은 비룡산(飛龍山)이며, 승천하는 구름에 노니는 용의 형상은 용바위가 있으니, 가히 용궁(龍宮)이라 할만하다.
장안사 불상.각자의 기원을 담은 리본들.
장안사 불상.각자의 기원을 담은 리본들.
주암정(舟巖亭)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였던 채익하(蔡翊夏) 선조를 기리기 위해 1944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이다.석문 8곡 중 제2곡인 이곳 정자 앞으로 흐르는 금천(錦川)은 강가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그중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선실(船室)처럼 지었다.예전에는 바로 밑으로 강물이 흘렀으나 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바뀌고 제방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연꽃과 능소화를 심어 운치를 더하게 한 뒤에는 가족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여 문경의 명소가 되었다.
주암정(舟巖亭)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였던 채익하(蔡翊夏) 선조를 기리기 위해 1944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이다.석문 8곡 중 제2곡인 이곳 정자 앞으로 흐르는 금천(錦川)은 강가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그중 배 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선실(船室)처럼 지었다.예전에는 바로 밑으로 강물이 흘렀으나 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바뀌고 제방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연꽃과 능소화를 심어 운치를 더하게 한 뒤에는 가족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여 문경의 명소가 되었다.
후손들이 매년 이곳에서 종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0세 종손(채훈식)이 관리하고 있다.
후손들이 매년 이곳에서 종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0세 종손(채훈식)이 관리하고 있다.
채익하의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조선조 예종 1년(1469년) 21세때 문과(文科)인관시(館試), 회시(會試), 전시(殿試)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1511년 국내 최초 한글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저술한 난재(懶齋) 채수(蔡壽)의 6세손이다.강희(康熙) 12년(1673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성균관 생원으로 학덕을 겸비한 인물로 충의위(忠義徫)를 지낸 채극명(蔡克明)의 아들이다.자(字)는 비언(悲彦), 호(號)는 주암(舟巖)이며, 1633년에 출생하고 1675년에 졸하였다.
채익하의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조선조 예종 1년(1469년) 21세때 문과(文科)인관시(館試), 회시(會試), 전시(殿試)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1511년 국내 최초 한글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저술한 난재(懶齋) 채수(蔡壽)의 6세손이다.강희(康熙) 12년(1673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성균관 생원으로 학덕을 겸비한 인물로 충의위(忠義徫)를 지낸 채극명(蔡克明)의 아들이다.자(字)는 비언(悲彦), 호(號)는 주암(舟巖)이며, 1633년에 출생하고 1675년에 졸하였다.
주암정 앞의 사과밭에는 탐스런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주암정 앞의 사과밭에는 탐스런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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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남 2019-11-23 14:44:19
멋진 장소의 사진과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청개구리 2019-11-22 15:48:44
힐링되는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