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1월 4일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11월 4일
  • 장석호 인턴기자
  • 승인 2019.11.04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 인턴기자] 11월 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308번째에 해당한다.

[사건]
1952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공화당 후보로 미(美) 대통령 당선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크" 아이젠하워(1890년 10월 14일 ~ 1969년 3월 28일)는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미국 육군 원수 출신인 그는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34번째 대통령을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그는 유럽에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일했으며, 1944-1945년에는 서부 전선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지역 공격에 대한 책임을 맡아 공격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1951년에 그는 첫 번째 나토 사령관이 되었다. 애칭은 아이크(Ike)다.

전임인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 당시 발생한 한국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휴전까지만 이끌어냈다.

1956년 - 헝가리 봉기(소련군,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점령)

2007년 – 피랍된 마부노호 석방

풀려난 마부노 1호와 2호. 2007년 11월 4일 미해군이 촬영하였다.

마부노호 소말리아 피랍 사건은 2007년 5월 15일, 어선 마부노 1호와 2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당한 사건이다.

마부노 1호와 2호는 부산 선적의 새우잡이 어선으로, 한국인 4명을 비롯하여 중국인, 인도인, 베트남인 등의 총 24명의 선원을 태우고 케냐 몸바사 항을 떠나 예멘으로 가던 도중 소말리아 근해에서 피랍되었다.한국 정부는 선주가 해적들과 협상하여 석방금을 대략적으로 합의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범과는 협상 없다”며 피랍사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대책반이 현지에 도착한 것은 피랍 사건 후 1개월이 지나서였다. 해적들은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8월 들어 선원들을 폭행, 감금하고 총을 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선원들 중에는 폭행으로 쇠약해져 말라리아에 전염된 사람도 있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오히려 해적들이 전에 납치했던 동원호 사람들에게 연락을 할 정도였다.이후 11월 4일(한국 시간) 선원들은 석방돼 미국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13일에 아덴으로 입항했다.

[문화]

1926년 -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 29일을 기준으로 제1회 '가갸날' 행사 개최(이후 한글날로 명칭과 날짜 변경)

1973년 - 충청북도 단양군 고수리 고수 동굴에서 동양 최초로 동굴 벽화 발견

1985년 - KBS 1TV에서 가요무대 첫 방송

1994년 - 한글점자연구위원회에서 한글 점자 통일안 발표

2015년 - 고척스카이돔 개장

고척스카이돔

고척스카이돔(Gocheok Sky Dome)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홈 구장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건립된 돔구장으로, 라운드에서 지붕까지의 최고 높이는 67.59m로 설계했으며 지붕에 반투명의 테프론막을 덮어 자연 채광이 가능하게 했다. 이밖에도 LED를 전체 시설에 반영하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친환경 건축물로 시공했다. 경기장 내에 수영장, 헬스장 등의 체육 시설과 함께 콘서트를 비롯한 문화 행사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2015년 5월 26일 넥센 히어로즈가 초반 2년 동안에 한해 목동야구장과 같은 일일대관 방식으로 이전해 오는 방식으로 협의했으나 거액의 사용료 문제로 인하여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였지만 2015년 10월 5일 서울특별시와 넥센 히어로즈가 2년간 고척 스카이돔 사용협약을 체결하였다.

서울특별시는 2014년 10월 17일부터 2014년 10월 26일까지 이 야구장의 1차 명칭 공모전이 가졌다. 29일 많은 공모 중에 서울돔, 고척돔, 서울고척돔, 고척스카이돔, 서울아레나돔이 1차 선정되었다. 이후 서울특별시는 1차 선정된 명칭 중에서 2차 명칭 공모전을 열어 최종 명칭을 고척스카이돔(GOCHEOK SKY DOME)으로 발표했다.

[인물]

1847년 - 독일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사망

펠릭스 멘델스존의 초상화. 영국의 세밀화가 제임스 워렌 차일드(1778–1862)가 1839년에 그렸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바르톨디(1809년 2월 3일 ~ 1847년 11월 4일)는 독일의 초기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지휘자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흔히 펠릭스 멘델스존이라고 한다.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영향을 크게 받아 12살에 작곡한 초기 현악 교향곡을 보면 이들을 따라간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들은 멘델스존의 가정에서 연주하였으며, 그가 죽은 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출판되어 사람들이 연주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1821년에서 1823년 사이, 즉 그가 12살에서 14살이던 시절에 쓴 것이다.

그의 놀라운 재능은 특히 성년기 초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E♭장조(1824년), 현악 8중주(1825년), "한여름 밤의 꿈" 서곡(1826년, 이 곡 종결부는 당시 멘델스존의 절친한 친구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현악 4중주 A단조(1827년, 2번으로 표시되나, 1번곡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작곡된 곡이다)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작품은 형식, 화성, 대위법, 음색, 베토벤의 작곡 기법을 그가 직관적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1993년 - 조계종 승려 성철 사망

2018년 - 영화배우 강신성일 사망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