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한국의 여행 - 충남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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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한국의 여행 - 충남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 최애영 사진객원기자
  • 승인 2019.09.30 0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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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전경.15mm 어안으로 촬영하였다.
해미읍성 전경.15mm 어안으로 촬영하였다.

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된 것으로 성곽둘레 1800m, 높이 5m, 면적은 약20만㎡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던 곳이며, 폐성된 지 오래되어 성곽이 일부 허물어지고, 성 안의 건물이 철거되어 그 자리에 해미초등학교와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1973년부터 읍성의 복원사업을 실시, 민가 및 관공서가 철거되었다.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충청도 지역의 군사방어를 담당했던 병영성(兵營城)이다.

조선 제3대 태종대왕이 1416년에 군사를 이끌고 도비 산에 올라 서산태안지방의 지형을 보면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기도록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3년(1421년)사이에 축성되었다.

효종3년(1652년)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종2품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중심지로써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토포(討捕) 등의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12년(1579년)에 병사영의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축제는 올해 ‘해미읍성 조선음식 식후경’이라는 주제로 10월11~13일까지 개최된다.

해미읍성의 남문(南門)이자 정문이다.문루의 대석에 '황명홍치사년신해건(皇明弘治四年辛亥建)'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명나라 연호로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해당하며 해미읍성이 그 해에 완공됐음을 말해준다. 진남문 북서쪽에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깊이 판 해자가 남아 있다.
해미읍성의 남문(南門)이자 정문이다.문루의 대석에 '황명홍치사년신해건(皇明弘治四年辛亥建)'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명나라 연호로 조선 성종 22년(1491)년에 해당하며 해미읍성이 그 해에 완공됐음을 말해준다. 진남문 북서쪽에는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깊이 판 해자가 남아 있다.
쭉 뻗은 소나무가 푸른 가을하늘에 한땀 한땀 정성스레 수(繡)를 놓는다.
쭉 뻗은 소나무가 푸른 가을하늘에 한땀 한땀 정성스레 수(繡)를 놓는다.
어안으로 찍으면 별 다르지 않은 동상도 이렇게 재미있는 캐릭터가 된다.
어안으로 찍으면 별 다르지 않은 동상도 이렇게 재미있는 캐릭터가 된다.
어안으로 보는 진남문.
어안으로 보는 진남문.
밤이 오면 전각에 각색의 불이 오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다른 각도에서 보는 진남문.
밤이 오면 전각에 각색의 불이 오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다른 각도에서 보는 진남문.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누군가 내게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누군가 내게 "바람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담을 수는 있다."고 했다.장노출 30초로 흔들리는 깃발 속에서 바람을 느껴 보세요.
사진을 찍는 이유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들, 마음(행복, 기쁨, 감사 등)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나가는 것에 대한 순간의 기록이다.
사진을 찍는 이유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들, 마음(행복, 기쁨, 감사 등)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나가는 것에 대한 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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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애 2019-09-30 11:28:41
해미읍성을 가본지 너무 오래되어 잊혀지고 있는데
이 기사를 보고는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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