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촉사(灌燭寺)는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반야산(般若山)에 위치한 고찰로서 아침햇살이 비쳐지는 미륵불상의 미소는 자애로움을 더해 준다.
조선 영조 19년(1743)년에 세워진 관촉사(灌燭寺) 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 반야산에서 나물을 뜯던 여인이 어디선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 그 곳에 가보니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어 집으로 돌아와 이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사위가 이 사실을 관가에 보고하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논의한 결과 불상을 조성하라고 보낸 바위라 결론짓고 불상 만들 장인으로 혜명대사가 천거되어 석공 등 100여 명을 데리고 내려와 37년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夕潮彌勒菩薩立像)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夕潮彌勒菩薩立像, 국보 제323호)은 높이가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석불로서, 보통은 ’은진미륵‘이라 불리고 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그 때까지도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미래불로 대개 산이나 들 등 바깥에 세워진 경우가 많다.
자연암반 위에 허리부분을 경계로 하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이 보살상은 몸통에 비해 특별히 얼굴이 강조되어 전체적인 균형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불상(佛像) 전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원초적인 힘은 고려시대 초기에 이 지방에서 유행하는 불교예술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얼굴과 손에 집중된 표현 양식은 마치 토속적인 신상(神像)을 보는 듯 위압적이며,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관촉사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 9년(1006)에 완성하였으며, 혜명대사가 대형 석불을 만들어 세울 수 없어 걱정할 때 사제촌에서 나타난 동자들이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아 불상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석불(巨石佛)의 대표적인 예로 인근에 있는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불상은 고려시대에 충남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던 불상의 양식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관촉사 불상의 건립은 이후 충남 각 지역에서 거불상의 조성에 큰 계기가 된 듯 하다.
◇ 관촉사(灌燭寺) 석등
석등이란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 불성(佛聖)을 밝혀주는 등인데, 처음에는 실용적 성격이 강했으나 후대에는 불전(佛殿)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장식적인 건조물로 변했다.
정사각형의 하대석(下臺石)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겼다. 기둥돌(竿石)은 둥근 형태의 상. 중. 하 3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석(火舍石)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네 귀에 귀꽃이 큼직하게 서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원과 4각 8각이 혼합되어 구성되었으며, 안정감이 약간 부족하나 전체적으로 크고 장중한 감을 주고 있다.
또한 화사석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사적비에 의하면 불상이 968년(고려 광종 19)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석등의 대표작이다
◇ 관촉사 윤장대(輪藏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