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한국의 여행 -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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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한국의 여행 -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 최애영 객원사진기자
  • 승인 2018.03.1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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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흥도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에 속한 섬이다.

 명칭의 유래를 보면 옛날 중국에서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암초에 부딪혀 파손되어 침몰 직전에 있었는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구멍을 막아 육지로 인도해주었고, 그 뒤 신령이 도와준 섬이라 하여 영흥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다른 유래를 보면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翼嶺君) 왕기(王奇)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칭했다고 한다.

 영흥도는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영흥도 앞의 바닷길은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싣고 오거나 중국에서 우리나라 평택으로 들어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다. 또한 남해에서 서해상을 따라서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영흥도를 거쳐 가야 한다. 오늘날도 대형 선박들이 통과하는 항로로 이용되고 있다.

 영흥도 앞 바다는 삼국시대에도 중요한 뱃길이었다. 신라와 동맹을 한 당나라는 백제를 침공하기 위하여 덕적도를 거쳐 영흥도 이웃 섬 풍도에 배를 정박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영흥도 주민이 몽골군에 쫓기던 삼별초를 도와 항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정부가 몽골에 항복하자 이에 항거한 삼별초는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정부를 옮겨 가면서 영흥도에서 저항한 기록이 있다.

 고려 말 왕족이었던 왕기(王琦)는 나라가 곧 패망할 것 같아서 개경을 떠나 멀리 영흥도로 은신했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고 후손은 성을 전씨(全氏)나 옥씨(玉氏)로 바꾸고 숨어서 살던 시절이었다. 익령군(翼靈君)인 왕기의 목숨을 구해준 섬이라 해서 이후에 이름을 연흥도(延興島)에서 영흥도(靈興島)로 바꿨다고 한다. 익령군 후손은 목장에서 일하며 말을 키우는 목동으로 살았다고 한다.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목장에서 말을 치던 영흥도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의 지도에서는 영흥도 서쪽에는 또 ‘양선과거수로지영종(洋船過去水路至永宗)’이라고 적혀 있다. ‘서양 배가 이 물길을 따라 영종도에 닿았다’는 뜻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와 미국 군함들이 영흥도를 지나갔다는 기록이다.

 장경리해수욕장은 울창한 송림과 고운 모래사장이 유명하다. 이곳은 오토캠핑과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여름철 서해 낙조가 일품이다. 수령 100년이 넘는 노송들이 서로 어깨를 포갠 채 길게 늘어서 있으며, 그 앞으로는 천혜의 갯벌이 펼쳐져 있어 썰물 때를 이용해 동죽, 바지락, 모시조개 같은 각종 조개류를 캐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거기에다 저녁이 되면 수평선으로 황금빛 낙조가 깔리는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 장경리 해변

 통일사는 6.25때 전사한 학도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3년에 창건된 절이다.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이 절에는 태극기가 매일 게양되고 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바다 위에 외항선이 들고 나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에 게양되었던 태극기가 사라졌다.  의아했으나 물어 볼 사람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만 안고 돌아왔다.

▲ 통일사

 국사봉(國思峰)은 영흥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고려 말 이성계에 의해 몰락당한 고려 왕족들이 영흥으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했다하여 국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약 5km의 국사봉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한 임도로 되어 있어 등산은 물론이고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국사봉 정상에 오르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인천 송도 신도시와 인천항을 입출입하는 외항선 그리고 용유도, 무의도, 자월도 등 빼어난 바다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 국사봉 가는 길

 십리포해수욕장에서는 멀리 보이는 농어바위와 수평선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마음이 탁 트인다. 원래 섬이었던 영흥도 부두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하여 십리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해변에 쌓인 하얀 잔설처럼 보이는 것은 굴껍데기들이 해안선을 따라 층을 이루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풍경이다.

   
  ▲ 십리포해수욕장
   
  ▲ 십리포 해수욕장 반대편 모습

 십리포 해수욕장 모래사장 안쪽에는 수백년된 서어나무 300그루 군락지가 있다. 900여평의 서어나무 밭은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방풍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해변 서어나무 군락지로 옹진군에서 적극 보호하고 있다. 서어나무는 참나무목과로 소사나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곳은 해풍이 심하여 마을에서 여러차례 시행착오 끝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사나무를 심어 방풍림으로 가꾸어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곧지 못하여 땔감으로 밖에 용도가 없지만 울퉁불퉁 굽은 가지와 예쁜 잎사귀가 보기 좋아 분재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다.

   
  ▲ 서어나무 군락지
   
  ▲ 방풍막 사이로 들어 온 모래가 사구처럼 되어 있다.
   
  ▲ 바위 틈 새로 자라는 서어나무가 바위를 갈라지게 하고 무너져 내릴 듯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제발 아무 일없이 몇 백년이고 장수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1950년 9월 15일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세계사적으로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끝냈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장병들 외에 영흥도 주민으로 조직된 대한청년단 방위대원 들이 참여하였다. 이 작전 기간 중 9월 13일 북한의 대대급 병력을 맞이한 청년방위 대원들은 703함대의 필사적인 함포 지원아래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 때 순국한 해군 영흥지구 전투전사자와 영흥면 대한청년단 방위대원 14인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인천상륙작전 전초기지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 인천상륙작전 전초기지 비

 내륙으로 연결된 길에 있는 선재도는 미국 CNN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섬 33곳'중 1위를 차지한 곳이다. 1위로 뽑힌 이유는 매일 2차례씩 바닷길이 열리는 목섬이라는 섬이 있어서이다.

   
  ▲ 선재도의 목섬
   
  ▲ 목섬을 반바퀴 돌면 보이는 모래길이다. 오후 2시경 이었는데, 500m는 족히 되는 거리만큼 물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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