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김과 함께 떠나는 카메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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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김과 함께 떠나는 카메라여행
  • 김민식 사진기자
  • 승인 2017.10.10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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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나라 터키 - 에페소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며, 주요 인종은 지중해-터키인이며 터키어를 사용한다.

 터기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공존하는 개발도상국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으며, 산업·서비스 부문이 농업보다 우세하다. 목화나 담배 같은 환금작물은 수출용으로 중요하다. 전국토의 1/4을 차지하는 이 삼림지대는 지금까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형제의 나라”인 터키는 1950년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인 약 1만5000명을 파병했다. 그 당시 파병한 터키군 대다수는 자원병이었고 그 중 3500명이 사망했다.

 터키에 가면 관공서나 호텔 국기봉에 터키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터키인들 역시 한국인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며, 그들 모두 대한민국 `코리아`를 ‘Brother`s country’라 부른다.

 터키는 우리가 돌궐족이라 부르는 투르크족이 세운 나라이다. 투르크족과 관계가 깊은 나라는 신라이며 신라공주가 터키로 시집가는 등 서로 교류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터키는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불렀다.

 ◎ 에페소스

 에페소스는 에게 해 연안에 있는 거대한 고대 도시 유적성경에서는 '에베소'라고 부르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기원전 10세기 경 건립된 에베소스는 이후 주변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다.

 항구가 인접한 지리 조건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게 해 무역의 중심 도시로 번영한 곳 특히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 받던 아르테미스를 위해 거대한 신전을 지으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지에서 에페소스를 찾는 순례 객들이 찾아왔다

 기원전 129년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로 정해지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에페소스는 로마 다음으로 손꼽히는 인구 25만의 대도시로 성장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이 이 시기의 것 들이다.

 하지만 7세기 경강에서 유입된 토사로 항구가 잠기고 전염병이 돌자 항구 옆의 도시는 버려졌고, 현재 성 요한 교회가 있는 아야술룩 언덕으로 옮겨진 도시는 이후 급속히 쇠락했다.

▲ 터키 에페소스 유적지
▲ (관청건물) 고대 에페소스 도시의 행정을 담당하던 관청 건물
▲ 쿠레테스 거리는 헤라클레스 문에서 켈수스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대리석 거리쿠레티란 시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던 사제들로 매년 에페소스에서는 성스러운 불을 지키는 사제들의 행렬이 있었다. 기둥 사이에는 에페소스 주요 인물들의 석상들이 있고, 기둥 뒤쪽으로는 상점과 신전 등이 있다.
▲ 이 발자국은 창녀촌으로 가는 길을 표시 하는데 이 발자국보다 작은 사람 즉 어린이들은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 니케여신은 멤미우스의 기념비로 바로 건너편에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 왼손에 월계관과 여신의 날개가 선명하다. 올림픽 메달과 스포츠 마케팅(나이키) 에 자주 등장하는 여신이다.
▲ 에페소스 원형극장은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이다.
▲ 트라이아누스 샘은 2세기경 트라이아누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분수이다.
▲ 켈수스도서관은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북원 되어있다. 입구에는 지혜, 운명, 학문, 덕을 상징하는 4명의 여신이 있는데 이는 모조품이고 진품은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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