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 공포로 몰아넣은 정부의 메르스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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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공포로 몰아넣은 정부의 메르스 개그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5.06.08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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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뉴스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메르스 관련 중계방송. 8일 현재 87명의 메르스 확진환자. 이 중 6명 사망. 격리 관찰자 2503명. 논란 끝에 밝힌 메르스 환자 발생 및 경유 병·의원 29곳. 전국 1800여 개 학교 휴업. 사우리다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발생 환자 전 세계 2위라는 오명. 지역경제 몰락. 중국 등 이웃 나라로부터 받고 있는 치욕.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서울시와 경기도·충청남도와 실무협의체 구성. 여기에 어김없이 곁들어지는 어설픈 정부의 향후 전망과 예방법. 메르스 예방 수칙과 감염이 의심되면 어찌어찌 하라는… 국회 역시 정쟁을 떠난 특별대책위원회 구성키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 취소는 아직 없다”는 청와대. 메르스 초기 발생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호언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게 메르스에 철저히 대응 하겠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개그였다. 전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무시무시한 개그. 행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 역시 뒤늦은 대책을 내놓으며 민심을 안심시켜 보겠다고 반전을 꾀하고 있다. 하기야 개그에 반전이 없으면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정부가 도모하는 반전의 기대감을 잃은 지 오래고, 공포감만 깊어지고 있다.

 전 국민을 통곡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의 악몽이 현실로 되살아난다. 세월호 참사 14일 만에 국민 앞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과 사죄 발표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해경을 전격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겠다고 강조했던 말도 되새겨진다. 그런데 바뀐 것은 없다.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무능에 몸이 떨려온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없는 것 같다. 메르스와 고독하게 싸우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만 있는 듯 하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버려져 울부짖는 연약한 새끼 늑대가 연상된다. 어미 잃은 늑대는 굶어 죽거나, 다른 포식자의 먹잇감이 된다. 어미를 잃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다. 새끼 늑대는 어미를 잃는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지금 우리 처지가 그렇지는 않은가. 정부의 보호는 없고 국민은 국민대로 각자의 방법을 찾아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듯하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도 못했기에 이에 대한 대안이 있을 리 없다. 세월호의 악몽을 겪고서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못했다니. 그래 놓고도 정부를 믿고 안심하라니. 사태를 이리 만들어 놓고 정부를 믿으라니. 어쩌면 화를 치밀어 올리게 하는 개그를 보는 것 같다. 시나리오도 없이 무대 위에 올라 관객들로부터 환호만 받기를 원하는 저질의 개그. 아주 불쾌한 개그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닥치고 있는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행동은 공포 그 자체다. 메르스가 무섭긴 해도 정부의 무능 보다 무섭지 않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 무능은 국민과 정부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성실하게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국민은 정부가 지켜야 할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의 갈등은 당연히 정치권으로도 비화됐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서로 비판하기에만 급급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청와대도 빠질 수 없다. 메르스 의심 환자의 동선과 신상을 알리는 자치단체장들의 독자적인 행동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에게 칼을 향한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국민은 안다. 정부의 비밀주의 정책과 국민을 향한 우민화 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이러한 갈등은 분열마저 만들어 내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와 국민, 개인과 개인이 갈등하며 빚어내는 분열의 위기감이 흉흉하기만 하다. 뒤 늦게나마 복지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발표가 조금은 위안이 된다. 국가의 보호 없이 개인 혼자 치열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보다는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무서움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민은 국가를 떠나 살수 없다. 숙명적으로 태어난 곳에서 뿌리 내리며 살아간다. 그곳이 풍요롭든 궁핍하든 본인의 선택은 아니다. 물론 세계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자신이 선택한 나라를 제2의 국가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국가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국민은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공동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국민은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에 최선을 다한다. 국가는 그러한 국민을 위해 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과연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다. 이 작고 초라한 땅덩어리에서 세계 강국으로 끌어올린 것은 국민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만큼 대한민국 국민은 똑똑하고 성실하며,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빈틈없이 잘 짜여 진 시나리오를 가지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관객이 환하게 웃는 개그 시나리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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