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 초나라 오기(吳起)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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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초나라 오기(吳起)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5.04.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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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춘추전국 시대 위(魏)나라 장군으로 명성을 떨치던 오기(吳起)가 초(楚)나라 재상으로 즉위했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에게 힘을 실어주고 혼탁한 사회를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오기는 즉각 법령 정비에 들어갔다. 불필요한 관직을 없애버리고 왕실의 먼 일족들의 등록을 폐지했다. 왕족에게 들어가던 돈으로 군사를 양성하고 백성들을 위해 사용했다. 나라는 풍요로워지고 국력은 강화됐다. 그러자 흐트러진 민심이 바로잡혀 갔다. 하지만 그동안 무의도식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던 왕족과 귀족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갔다. 오기는 이러한 왕족들의 증오를 무시하고 영토를 넓혀나갔다. 남쪽으로는 백월을 진압하고 북쪽으로는 진나라를 평정했으며 삼진을 물리쳤다. 천하 제국들은 초나라의 강성함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초나라의 힘은 막강해졌다.

 #승승장구하던 오기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를 신뢰하고 힘을 실어주던 도왕이 덜컥 죽었기 때문이다. 오기의 강경정책에 기득권을 잃어버렸던 왕족과 귀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기를 죽이려고 궁궐주변에 몰려들었다. 손에는 창과 칼, 화살을 들고 오기를 처형해야 한다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상황이 이같이 전개되자 오기의 심복들은 오기에게 도망갈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오기는 이미 궁궐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심복들에게 변방에 배치돼 있던 군사를 궁궐로 돌아올 것을 지시했다. 그곳에는 태자가 있었고, 태자를 왕으로 계승토록하면 자신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고 봤다. 오기는 궁궐에 남아 자신을 죽이려는 왕족들을 상대했다. 기세등등한 오기의 기에 눌린 왕족들은 감히 궁궐 안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사태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왕족과 귀족들은 폭도로 변해있었다. 폭도들 사이에서 화살이 날아와 오기의 귓가를 스쳤다.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 오기는 이미 차갑게 식은 도왕의 시체를 세워 안고 방어했다. 눈이 뒤집힌 폭도들은 왕의 시체에는 이미 관심이 없었다. 이때 오기가 외쳤다.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깨끗이 죽어주겠다. 하지만 나 혼자서 죽진 않을 것이다”라고. 폭도들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기를 향해 수 십 발의 화살을 날리고 창과 칼로 오기를 베었다. 오기는 도왕의 시체위에 고슴도치처럼 숨졌다.

 #이후 변방에 있던 태자가 궁궐에 입성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태자는 도왕의 시체에 수많은 화살이 꽂혀 시신이 훼손된 것을 보고 몹시 분노했다. “이유 여하, 지위 고하를 따지지 말고 도왕의 시신을 훼손한 자들을 모두 잡아 도륙하라”고 엄명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폭도로 둔갑해 있던 왕족과 귀족들이 모두 잡혀왔다. 오기를 죽이는데 가담한 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오기가 죽으면서 왜 도왕을 방패막이로 삼았는지 알지 못하고 죽어갔다. 당시 법에는 왕의 시신을 욕되게 할 경우 죽음으로 다스리게 돼 있었다. 죽음을 맞으면서 오기가 내세운 지략이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해외자원외교 수사로 사전구속영장을 받은 상태에서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진 다음날 북한산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의 옷 속에서 발견된 쪽지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로 드러나고 있는 정치권 실세들을 대상으로 제공한 금품 규모와 과정, 로비 활동 등이 나라를 블랙홀로 빠뜨리고 있다. “비리의 덩어리를 찾아 뿌리뽑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뒤 나온 성 전 회장의 정치권 리스트가 부메랑이 돼 자신의 측근들을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성 전 회장의 리스트에 적혀있는 정치권 심장부에 있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된다. 허무맹랑하다”며 부인하고 있다. 급기야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 만큼 밝혀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살아있는 권력 실세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공소시효 등과 같은 법리 적용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과연 국민이 믿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죽은 자의 리스트가 나라 전체를 흔들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오기의 죽음이 수많은 왕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듯이, 성 전 회장의 죽음과 함께 밝혀진 리스트가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을 사지에 몰아넣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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